- 전문용어
언어학의 개념 중에 '자연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일컫는 말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언어로 이해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를 이루는 개념은 '인공어'인데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나 에스페란토처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언어를 일컫는다. 간혹 한국어를 세종대왕이 만든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세종이 만든 건 한글(훈민정음)이라는 표기체계이지 한국어(조선어)가 아니다. 다시 자연어와 인공어로 돌아오자. (에스페란토 어, 클링온 어 등을 제외하면) 쉽게 말해서 자연어는 인간의 언어이고 인공어는 컴퓨터의 언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인간의 언어와 기계의 언어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인간의 언어는 모호함이 있는데 기계의 언어는 그렇지가 않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표기된 언어의 경우, 인간의 언어는 일부러 모호하게 표현하는 기법이 발달한 듯 보이는 데 반해 인공어는 모호함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인간의 언어에는 둘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 있다. 예컨대 '영희가 울면서 떠나는 철수를 배웅했다'와 같은 문장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는 사람이 영희일 수도 있고 철수일 수도 있다. 이런 문장이 허용되는 것이 인간의 언어이다. 문맥을 고려해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어에서는 절대로 이런 표현이 불가능하다. 컴퓨터는 해석할 수 없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쉼표를 적절하게 찍어 줄 필요가 있다. 적절한 문맥이 주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미래에 인간과 흡사한 인공지능이 출현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재는 그렇다.)
기계어에서 나타나는 해석의 완전무결성은 '수에 관한 언어'(이하, 편의상 '수학'이라고 함)와 상당히 닮아 있다. 세상 어느 누가 보더라도 동일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전 포스트에서 인용했던 '음수 x 음수 = 양수' 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해석의 완전무결성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마이너스' 즉 '-'의 개념을 머리 속에 정립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또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때에는 수직선 상에서의 좌측 이동 방향으로 이해하면 편하고, 어떤 때는 '빚'이나 '손실'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이런 특성은 자연어의 특성과 닮았다. 그런데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곱하면?? 여기서부터는 이해가 어렵다. 애시당초 '마이너스'의 개념이 비유적이라서 명백하게 다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찰흙 한 덩이 + 찰흙 한 덩이 = 찰흙 한 덩이'와는 또 다른 난제가 된다. 해석이 완전무결하지 않기 때문에.
'수학'이라는 학문은 완전무결한 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학문이다. 수학 분야는 그것을 추구한다. 소위 공리 체계가 무너지지 않는 한에서만 이론이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음수 x 음수 = 양수'에 관한 동영상이 뭔가 시원하지 않다. 공리 체계를 전제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시작을 공리 체계에 기초하면 이해가 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자연적인 경험을 바탕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자연적인 경험의 틀로는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언어 기호와 수학 기호는 토대부터, 출발부터 다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수학을 어려워하는지도... 이 문제는 언어 기호가 진리를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철학적 논쟁과도 무관하지 않다. 초점은 조금 다르지만 이전 글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 언어의 도상성과도 무언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수학의 언어는 인공어처럼 완전무결한 해석이 가능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자연어가 가진 애매함(마이너스의 개념에 관한 언어적 설명들)까지도 끌어안으려고 한다. 어쩌면 '공리'는 자연어와 인공어의 간극을 매우려는 노력의 결과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