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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Apr 05. 2022

지는 게임도 재미있어!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햇빛 초등학교는 우리 집에서 버스로 십여 분 거리에 있다. 제법 가까운 거리지만 걸어서는 갈 수 없기에 나는 항상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버스를 타고 가면 수업 시간 30분 전에 도서실에 도착한다. 아이들이 올 때까지 오늘의 수업 내용을 준비하고 있으면 아직 종례도 마치지 않은 아이들이 빼꼼하고 인사를 하고 간다. 


 수업 시작 10분 전에 도착해 익숙하게 문제지를 꺼내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간의 수업이 도움이 되었구나 싶어 뿌듯해진다. 이제 아이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오늘의 학습량을 정하고 그 목표치를 달성한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니겠지만 아이들의 발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바로 놀이 시간을 주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도 중요하지만 놀이도 공부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놀이야말로 아이들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정말 중요한 공부다. 


 2시 20분,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학원 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붙잡고 이번에는 놀이 공부를 시작한다. 사실 시골이라 버스를 타려면 나도 꼼짝없이 30분을 기다려야 하니 우리의 놀이시간은 서로 상부상조하는 격이다. 여하튼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하루에 30분 정도는 꼭 같이 논다. 


 우리가 하는 게임은 다양하다. 고전 게임인 369도 있고, 가끔은 한글 공부도 할 겸 초성 퀴즈도 한다. 초성 퀴즈는 내가 칠판에 단어의 초성을 적으면 아이들이 작은 메모판에 답을 적는다. 사실 나도 이 게임을 정말 좋아했는데 아쉽게도 매번 우승자가 똑같은 사람이라 결국 그냥 답을 외치기로 방식을 바꿨다. 단어 공부도 할 겸 우리는 자주 초성 퀴즈나 스무고개 등의 게임을 같이 한다. 


 또 다른 게임은 바로 윷놀이다. 문구점에 갔다가 귀여운 캐릭터 윷놀이 세트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보면 좋아할 것 같아 한 번 사봤는데 결과는 인기 만점이다. 


 아이들에게 윷놀이 규칙을 알려주고 두 명씩 편을 나누어 놀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앞으로 나가 말을 판에서 나오게만 하던 아이들은 점차 전략을 세우게 되었다. 업거나 혹은 상대의 말을 잡아 게임을 역전시킨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신이 나 도서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다행히 도서실을 이용하는 학생은 없지만 조용해야 할 도서실이 시끄러우니 정말 죄송할 따름이다. 


 “얘들아, 우리 조금만 신나기로 하자.”


 대체 조금만 신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아이들은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윷가락을 던진다.


 “아싸! 윷 나왔다!”


 이럴 때만 보면 영락없이 나 어릴 때랑 똑같다. 처음에는 내가 심판이 되어 아이들의 게임을 지도했지만 나중에는 나 없이도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을 보니 역시 게임 배우는 것은 아이들이 참 빠르다. 공부도 게임만큼 쉽게 배우면 좋으련만. 


 이 밖에도 우리는 종종 다양한 게임을 한다. 공기놀이도 하고, 쌀보리 게임에 일명 쎄쎄쎄라고 하는 손동작 놀이도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내가 어릴 적에 했던 놀이를 많이 알고 있었다. 


 몇십 년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가끔은 나도 열 살 꼬마로 돌아가 아이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십 년까지는 아니어도 한 일 년은 젊어진 기분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서로 협동을 배우고 양보를 배운다. 이길 수도 있지만 질 수도 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가끔 자기가 이길 때까지 게임을 하자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들이 있는데 강한 승부욕도 좋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이는 어른인 나조차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끔 누군가와 언쟁을 할 때면 지기 싫어서 이상한 말들로 자기 합리화를 할 때가 있다. 돌아서서 후회할 일을 왜 하나 싶지만 패배를 인정한다는 일은 정말 쉽지가 않다. 


 아이들은 이런 나보다 훌륭하다. 


 오늘은 윷놀이 말고 책을 읽고 싶다는 주연이 대신 나도 아이들과 같이 편을 나누어 윷놀이를 했다. 나랑 같은 팀을 하고 싶다는 유라와 모처럼 의기투합을 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세 판을 내리 진 것이다. 이미 세 판이나 승리를 거머쥔 소은이와 승훈이는 의기양양해 목소리가 커졌다. 


 “아싸! 우리가 세 판 이겼다!”


 큰소리로 자랑하는 승훈이를 보고 유라의 눈치를 살폈다. 괜히 나 때문에 세 판이 나 져 속상한 것은 아닌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다. 


 “선생님, 괜찮아요. 우리 내일은 꼭 이겨요.”


 유라의 그 당당하고 씩씩한 응원을 듣고 있자니 걱정하던 내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래, 이길 수도 있지만 질 수도 있지. 그래도 서로 재밌었다면 오늘의 패배도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 덕분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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