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무력감을 느끼는 우울증에서는 나를 지탱하는 모든 관계들에도 쉽게 지치게 된다. 설사 좋은 일이나 좋은 관계에서라도 더 이상 힘을 내기가 어려웠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친구들을 만나면서 위로도 받고 즐거워질 수 있겠지만 우울증에 걸린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즐거움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일상을 조금 회복할 수 있던 후에야 친구들과 다시 연락할 수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사라져 버린 탓에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가 힘들었다. 언젠가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내가 연락하겠다고 몇 년 동안 휴대폰도 정지시키지 않은 상태였지만 휴대폰 화면을 보기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잃어버렸던 나를 기억하는 과거의 친구들이 내게 먼저 연락을 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어떤 음식을 못 먹는지 기억하는 이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낼 수 있었다. 여름이면 무조건 후식으로 팥빙수를 먹었고 쌀국수를 좋아했던 나를 기억해냈다. 내 기억에서는 없어진 취향이었다.
나는 다시 친구와 간 카페에서 녹차라테를 마시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아서 기뻤고 내 취향을 다시 기억해내서 좋았고 소소한 이야기와 나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친구와의 재회가 제일 행복했다. 나는 심각하게 낯을 가리고 처음 본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편이다. 사람을 사귀기 어려운 나에게 깊고 오래 연락을 한 친구들은 그래서 대단한 사람들이면서 고마운 사람들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늦은 나이에도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내가 깨달은 것은 무언가를 배우고 변화해가려는 사람들과는 늘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 만나든지 시기와 상관없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과는 오랫동안 서로 챙겨주는 인연이 된다. 심지어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외국에서도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었다.
일본인 친구는 어학원에서 만났는데 하필 이 때는 코로나 때문에 나는 한 달 반 정도 어학원에 다니고 그 이후로는 이 친구와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만나면 우리는 자유에 대해서 오랜 시간 이야기하기도 하고 쏘 공원(Parc Sceaux)에 벚꽃 놀이하러 가서 아무 말 없이 몇십 분동 안 가만히 앉아있어도 편한 사이이다. 친구가 일본에 돌아간 이후에도 종종 구글 화상채팅을 통해서 서로 안부를 전하고는 한다. 조용해 보이는 성격과는 달리 우리는 락을 좋아하고 해골을 좋아한다. 나를 그린 엽서를 보내주었는데 한 손에는 철학책과 다른 손에는 바게트를 들고 에펠탑 앞에 서있는 모습이다. 친구에게 보인 내 모습은 내가 느끼는 나보다 더 따뜻한 거 같다.
프랑스인 친구는 철학과 수업 필기를 부탁하다가 친해진 친구이다. 나보다 열 살 넘게 어린 친구는 맛집을 좋아하고 프랑스 자수로 작품을 만들며 예쁜 편지지를 모으는 친구이다. 우리는 서로 조그만 선물을 챙겨주는데 나는 친구에게 양배추 김치와 동그랑땡, 부리또를 전해주었으며 친구는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도 초콜릿 쿠키와 폴란드식 만두와 슈크루트를 만들어주었다. 친구가 알바를 마치고 한가해진 날에 온전히 하루 동안 파리 시내를 돌아다녔다. 도중에 들린 카페에서 나는 친구에게 타로카드를 봐주고 친구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자수정 및 원석 몇 개를 보여주었다. 예상치도 못한 분야에서도 우리는 잘 맞았다.
새로운 공간에서 우리는 그저 프랑스어를 배우거나 전혀 다른 나라에서 철학을 배웠을 뿐인데 너무나도 잘 맞는다. 세간에서 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친구다, 대학교 친구가 진짜 평생 친구라고 말하는 썰은 아마도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시기가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다는 공통적인 경험을 일반화한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다가 짜증을 내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친구는 나를 걱정해주었다. 친구의 도움 덕분에 고기를 사 먹을 수 있었다. 물리적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던 것도 있었지만, 내 사정에 공감해주고 마음 써준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었다. 이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아무리 우리가 서로 달라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마음이 열려있고 생각을 키우는 사람들은 친구가 될 수 있다. 프랑스에서의 삶을 시작하기 전의 친구들도,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도 모두 내게 마음을 열어준 고마운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