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하게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옆에서 간호하던 엄마도 금방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내 손자를 본 후에 말도 없이 떠나가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서 엄마랑 연락이 안 될 때에는 혹시 돌아가시면 어쩌나 매일 맘 졸이기도 했습니다. 주무시듯 편하게 가셨다는 외숙모의 통화에 그나마 울음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떠나기 전에 얼굴도 못 보고 손도 못 잡고 임종의 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너무 컸습니다. 머나먼 나라에 있어서 할머니는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훌훌 떠난 것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할머니 곁에 가고 싶었지만 당일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열두 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소식을 안지 하루가 넘어서야 겨우 할머니 발인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서 무심코 본 장례식장 모니터에 할머니 사진이 보이는 순간에야 할머니가 지금 이곳에 없다는 것을 뒤늦게 실감했습니다. 장례식장에 있는 할머니 영정사진에 인사를 해야 하는 게 너무 낯설고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할머니를 장지까지 모셔다 드리는 길에
'우리 할머니는 어디 있는 걸까?'
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남긴 흔적이나 표상이 곳곳에 있는데 할머니는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는 태어난 고향에 한 번은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고향 땅에 모셔다 드리게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날이 참 화창해서 무탈히 따뜻한 햇빛과 사람들의 기도 속에 할머니를 안치했습니다.
삼우제에는 할머니의 가족 네 명만이 다시 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며칠 동안 할머니를 떠나보내니 전처럼 계속 울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다음번에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인절미, 하루에 다섯 잔도 마실 수 있다고 자랑했던 커피를 들고 와야겠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손자'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저는 손녀입니다. 할머니한테 왜 여자인데 손녀라고 안 부르고 손자라고 부르냐고 물어봤더니 "내 마음이야"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명절날 모두가 모인 곳에서도 제가 바로 안 오면 어딨 냐고 찾으면서 과일을 포크에 꽂아서 챙겨주셨습니다. 할머니와의 대화는 늘 재밌었습니다. 똑똑하고 웃기는 할머니는 세상에서 나와 제일 대화가 잘 통하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휴대폰에 저장된 할머니 동영상들을 다시 보니, 할머니가 제가 보낸 모자를 쓰고 웃으면서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흥이 나서 "꽃보다도 예쁜 우리 손자, 날마다 보고 싶네"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빨리 공부를 끝내서 취직해서 할머니 용돈도 챙겨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운전면허도 따서 할머니 데리고 여행시켜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먹을 거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이제 맛있는 쿠키나 스콘도 만들어드릴 수 있는데.
평생 예뻐해 주고 사랑해 준 할머니에게 호강시켜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입원하신 병원이 집에서는 삼십 분도 안 걸리는 곳인데 홀로 너무 멀리 살고 있어서 스무 시간도 넘게 지각했습니다. 느리게 움직이는 사이에 할머니가 떠나가버려서 너무 미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