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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B Sep 06. 2023

집 밖에 나가기가 어려워도, 용기를 내자

5일을 준비한 오늘의 외출

한동안 집 밖에 나가기가 다시 쉽지 않았다. 마음을 정리하고 한숨 돌려도 되는데도 4시간 정도 되는 수면시간에 다섯 번 이상 깨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랬겠거니 하고 마음을 내려놓아도 잠을 깊이 못 자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또 우울증의 선을 넘은 것 같다.


외출하고 싶어도 직접 나가기까지 5일은 준비해야 한다. 매일 나가려고 해도 문턱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빨래가 밀려 있어도 왜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도 못하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5일은 넘게 걸린 것 같다. 택배가 오는 날은 반갑지만 또 사흘이 걸려서야 경비원 아저씨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마음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병원을 예약했는데 마침 어떤 날은 상태가 좋아진 것 같아서 취소를 했다. 그다음 날 다시 도로 전과 같이 마음이 무거워져서 몸도 무거워졌다. 결국 5일 후로 다시 예약을 잡았다. 프랑스에서 주치의에게 우울증 상담을 받는다니 나는 한국과 프랑스의 의료체계를 비교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수면제와 항우울제를 달라고 할 참이다. 한국에서 받아온 두 종류의 약봉지를 보여주면서 최소치의 용량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셈이다. 증상이 호전되는 와중에 유학을 결심해서 하루에 한 알 통째로 먹는 것이 아니라 네 조각 중 하나를 먹고 있다. 한국에서 먹던 약은 하늘색 약과 하얀색 약인데 굳이 종류를 알려하지 않았다.


프랑스 제약회사가 유명하니 처방해 주는 약도 좋지 않을까는 기대도 해볼 수 있겠다. 유튜브에서 프랑스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는 우울증 설명 영상도 보았다.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우울증이 생각보다 심하게 재발한 듯하다. 하고 싶은 것이 없고, 식욕도 없다. 산책을 해도 먹고 싶은 것이 없고 하루 종일 굶어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 입맛을 돋우려 오이와 당근을 많이 넣은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도 반의 반도 못 먹고 남기게 되었다. 원치 않게 소식좌가 되었다.


평소에 맛있는 건 많이 먹을 수가 있었는데 갑자기 식욕이 사라져서 이상하긴 했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살아가는 것인데 먹는 것도 나를 설득해서 살려면 먹어야 하니까 더 먹으라고 타일러야 하고, 침대를 벗어나는 것도 오후 4시가 넘어서야 가능하다. 잠이라도 푹 자면 나아질 텐데 걱정을 지우려 해도 이제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어도 불안한 뇌는 밤새 나를 계속 깨운다.


그래도 오늘은 5일간의 준비 기간 끝에, 외출도 해서 택배도 찾아오고 공원을 지나가면서 꽃과 나무도 보았다. 맑아서 좋지만 더운 날씨에 모노프리에서 탄산수도 사 먹었다. 의료보험 카드인 카트 비탈(carte vitale)도 새로 발급받은 지 세 달 만에 갱신을 했다. 갱신을 하지 않으면 의료보험 혜택을 바로 받을 수 없다. 외출을 하면서 집에 돌아오니 세탁기 종료 4분 전이었다. 빨래를 널고 냉장고에서 일주일 넘게 방치된 닭가슴살로 덮밥을 해 먹었다. 밀린 설거지도 절반은 해냈다. 공사 소음 때문에 조금 귀찮았지만 근처 도서관에서 에어컨을 쐬면서 브런치에 몇 달 만에 글을 올리기도 하고 논문 쓰기에 필요한 책도 조금 손을 대었다. 오늘 하루 만에 드디어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는 날을 보내어서 뿌듯했다.

다이어리에 체크한 오늘 할 일들을 드디어 모두 끝냈다. 내일도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은 남았지만 드디어 나는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래도 병원에는 꼭 갈 생각이다. 나아질 힘이 있을 때가 치료의 적기임을 경험상 뼈저리게 잘 알기 때문이다. 내일은 친구를 만나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할지 계획한 나의 여행 프로그램을 작게 발표할 것이다. 우리 모두 소비지향의 여행보다는 한국의 문화, 자연을 중심으로 보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단번에 생각난 것은 템플스테이였다. 그 외에도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다.


오늘 짧게나마 대화를 나눈 사람들 모두 친절했다. 내가 집에 틀어박혀있는 동안 사람들은 땡볕에서 걸어 다니고 일하고 말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엄마도 내일 만날 친구도 다 좋은 사람들인데 나는 왜 아직도 무거운 마음에서 헤매는지 모르겠다. 친구에게도 의사 선생님에게도 도와달라고 말할 것이다. 교수님에게도 그래야겠다. 혼자서는 아직은 힘들다. 그래도 주위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으면 나도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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