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로서의 삶

엄마

by 소화 데레사

우리 엄마는 전업주부였다. 그 시대는 전업주부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였긴 했지만 엄마가 바라는 건 아마도 전업주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는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의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셨고, 그 후엔 쭉 전업주부로 사셨다. 하지만 엄마 친구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들이 꽤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훌륭한 음악가도 있었고, 굉장히 잘 나가는 변호사도 있었으며 각자 위치에서 무언가 들을 열심히 하고 계셨다. 그래서 결혼 초에는 전업주부로 사는 본인 스스로의 모습에 조금은 위축된 삶을 살았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그렇게 결혼 이후에 삶의 반경이 많이 좁아졌고, 사회생활이 아닌 동네 생활에 접어들게 되었다며 쓸쓸한 미소를 보인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자녀들 양육에 온 힘을 쏟았다. 엄마가 이루지 못했던 커리어 워먼의 꿈을 자식들을 통해 이루고 싶었는지 자식들이 하겠다는 공부는 끝까지 밀어주고자 노력했다. 엄마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고 따라주었던 자녀는 우리의 둘째 언니였다. 둘째 언니는 열심히 공부했고 학교 다닐 때마다 수석을 차지하며 온갖 상을 휩쓸었고, 학교를 졸업할 때도 늘 상을 한 아름 안고 졸업을 했다. 그리고 석사, 박사를 거쳐 지금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끔 TV도 나오는 대학교수 딸을 보며 엄마는 늘 자랑스러운 듯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 아이고, 교수님 어머니 오셨네." 하며 반기는 친구들 앞에서는 미소로 화답을 하셨지만 자부심만큼은 대단했던 것 같다.


엄마는 여자라고 집에만 있어야 된다는 법은 없다고 주장하시며 딸들이 사회생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나도 우리 아이들을 엄마에게 맡기고 학교를 나갈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엄마는 우리 집과 당신 집을 오가며 나의 아이들을 돌봐주셨는데, 오가는 시간이 꽤 소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엄마는 손자 손녀들과 함께 진심을 다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은 그때의 그 할머니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할머니와 함께 한 놀이는 환상 그 자체였다.

손자 손녀들이 크고 바빠지면서 본인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엄마는 오히려 서운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훗날 엄마는 손자 손녀를 봐주는 시간이 육아의 힘듦이 아니라 본인의 딸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든든한 지원이었으며 딸의 자녀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이었다고 회고하셨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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