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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삵 탐구의 추론구조: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생태학

by 법의 풍경
"모든 선언은, 똥 위에 똥으로 쓰인다. 그것은 생존의 언어였고, 리듬의 문장이었다."

들어가며: 사고하는 방식의 해부학


소요산에서 발견한 중첩된 배설물을 해석하는 과정은, 단순한 관찰이나 직감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작동한 것은 내가 '범추(汎推, Omniduction)'라고 명명한 통합적 추론 체계였다. 이는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삼원적 추론 체계를 확장하여, 동양적 사유의 직관성과 서구적 논리의 체계성을 융합한 새로운 인식론적 방법론이다¹.


Aethymos에 이은 두 번째 나의 개똥철학 '추론의 재범주화'는 아래 Medium에 연재 중이다.


범추론적 사고란 무엇인가?

20250706_0430_Neural Memories Bloom_simple_compose_01jze125tzft9svqe74w53wsj9.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범추(汎推, Omniduction)는 하나의 추론 방식이 아니라, 여러 추론 방식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통합 체계이다. 이는 직추(直推, Adduction), 귀추(歸推, Abduction), 총추(總推, Biduction)라는 세 가지 인식 방식을 맥락에 따라 자유롭게 조합하고 전환하는 '사고의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숲 속에서 삵이 시각, 후각, 청각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환경을 파악하듯이, 우리의 사고 역시 단일한 논리적 경로가 아닌 다차원적 인식 네트워크를 통해 작동한다.



1. 직추(直推, Adduction): 몸이 먼저 아는 지식

1.1 감각적 직관의 순간

20250706_0431_살퀭이의 흔적 발견_simple_compose_01jze12219ez1rtv4ft88bmze9.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살퀭이다.

그 순간은 논리적 추론 이전에 일어났다. 배설물의 질감, 색깔, 냄새, 형태가 종합되어 하나의 직관적 판단으로 수렴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직추(直推)의 본질이다.


직추는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말한 '신체적 지향성(bodily intentionality)'과 깊이 연관된다². 우리의 몸은 의식적 사고보다 먼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축적된 경험들이 순간적 판단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살퀭이파'로서 쌓아온 감각적 기억들이, 성인이 된 지금 무의식적 패턴 인식 능력으로 재현된 것이다.



직추(Adduction)의 특징

20250706_0522_무의식적 패턴 인식_simple_compose_01jze40qvxfrp8d2jf017wwq14.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정의: 감각과 직관을 바탕으로 한 즉시적 판단 체계. 논리적 검증 이전에 작동하는 신체적·경험적 인식 방식.

작동 메커니즘:

다중 감각 정보의 통합적 처리

무의식적 패턴 매칭

과거 경험의 순간적 활성화

사례: 배설물을 보는 순간 "이것은 삵의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판단하는 것



1.2 직추의 한계와 검증 필요성


하지만 직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직감이 옳을 수도 있지만, 착각일 수도 있다. 특히 삵과 너구리처럼 생태적으로 유사한 동물들의 흔적을 구분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여기서 직추는 가설 생성의 출발점 역할을 하며, 다음 단계인 귀추로 이어진다.



2. 귀추(歸推, Abduction): 최선의 설명을 찾아서

2.1 놀라운 현상과 가설의 탄생

20250706_0438_Forensic Light Investigation_simple_compose_01jze1fpk9e9fat56tf3dmzv79.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퍼스의 귀추법(abduction)은 "놀라운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찾는 추론 방식이다³. 소요산에서 발견한 중첩된 배설물은 단순한 관찰 대상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수수께끼였다.


왜 한 덩어리는 검고 단단하며, 다른 덩어리는 갈색이고 부드러운가? 왜 이 두 배설물이 같은 장소에 위치하는가? 특히 수박씨 같은 씨앗이 발견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여러 가설이 도출되었다:

가설 A: 한 마리 동물이 서로 다른 시기에 배설한 것

가설 B: 두 마리의 서로 다른 동물이 시간차를 두고 같은 장소를 이용한 것

가설 C: 먹이의 변화로 인한 배설물 성상의 차이



귀추(Abduction)의 특징

20250706_0438_Investigative War Room_simple_compose_01jze1g3fyf2mt5fwed25tj7d7.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정의: 관찰된 현상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생성하는 추론 방식. 탐정의 추리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작동 원리:

이상한 현상의 인식

다양한 설명 가능성 탐색

가장 경제적이고 일관된 가설 선택

사례: "수박씨가 있다면, 농가 근처에서 수박을 먹었을 것이다" →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동물은 삵 또는 너구리다"



2.2 경합하는 가설들

20250706_0431_Faeces Comparison Mystery_simple_compose_01jze12gf3eq7tc6eermrqveb7.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귀추의 핵심은 가설들 간의 경쟁이다. 각 가설은 관찰된 증거들을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배설물의 형태, 냄새, 위치, 주변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두 마리의 서로 다른 동물이 시간차를 두고 같은 장소를 이용했다"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 있게 나타났다.



3. 총추(總推, Biduction): 검증과 수정의 순환

3.1 연역과 귀납의 변증법적 통합

20250706_0443_수상한 지역 증거지_simple_compose_01jze1rd5jexvtz3hcmcnpg0cz.png 추억의 바야바가©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생각난다.

총추는 연역적 논리와 귀납적 관찰을 반복적으로 순환시키는 추론 방식이다. 이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⁴나 듀이의 탐구 이론⁵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연역적 단계: 가설로부터 검증 가능한 예측 도출

"만약 삵과 너구리가 모두 이 지역을 이용한다면, 소요산은 두 종 모두에게 적합한 서식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형, 먹이, 물, 은신처 등의 생태적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귀납적 단계: 실제 증거 수집과 검증

소요산의 지형적 특성 조사

먹이원과 수원 분석

기존 목격 사례와 공식 기록 검토

인접 지역의 삵 분포 현황 파악



듀이의 탐구이론이란?

20250706_0443_Inquiry's Rhythmic Journey_simple_compose_01jze1rnxpfd4a88a7maep3z3n.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듀이의 탐구이론은 인간이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능동적으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강조한다. 그는 탐구를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경험과 반성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창의적 활동으로 보았다.


듀이에 따르면, 탐구는 실제 생활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가설을 세우고, 실험과 검증을 거쳐 결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는 기존의 지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듀이는 특히 반성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는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탐구는 협력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필요로 하며, 다양한 관점과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탐구의 결과는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듀이는 탐구 과정에서 융통성, 책임감, 공정성, 인내심 등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태도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듀이의 탐구이론은 현대 교육에서 문제 중심 학습이나 프로젝트 학습 등 학생 주도의 학습 방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요컨대, 듀이의 탐구이론은 경험과 반성적 사고, 그리고 도덕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 능동적 문제 해결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학습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총추(Biduction)의 특징

정의: 연역적 추론과 귀납적 관찰을 반복적으로 순환시키며 가설을 점진적으로 정교화하는 추론 방식.

순환 구조: 가설 설정 → 예측 도출 → 관찰/실험 → 결과 분석 → 가설 수정 → (반복)

핵심 특징:

끊임없는 자기 수정

증거와 이론의 상호 조정

점진적 진리 근사



3.2 증거들의 수렴

20250706_0520_Forest Researcher Cycle_simple_compose_01jze3x1sbfq982az5pb0hh07n.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총추적 검증 과정을 통해 다양한 증거들이 하나의 일관된 해석으로 수렴되었다:

지형적 증거: 소요산의 암반 지대와 깊은 계곡은 삵의 은신에 적합

생태적 증거: 충분한 먹이원과 수원, 적절한 은신처 존재

분포학적 증거: 포천·연천 등 인접 지역에서의 삵 목격 증가

행동학적 증거: 시간차 배설을 통한 종간 경쟁 회피 패턴



4. 범추(汎推, Omniduction): 통합적 해석의 출현

4.1 추론 방식들의 통합적 작동

20250706_0520_Cognitive Ballet Threads_simple_compose_01jze3xjdeegs9rgdwtqfna17r.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범추는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추론 방식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작동하는 메타-추론 체계이다. 이는 단순한 논리적 절차가 아니라,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이다.


소요산 삵 탐구에서 범추는 다음과 같이 작동했다:

직추를 통한 문제 인식: "이것은 중요한 발견이다"라는 직감적 판단

귀추를 통한 가설 생성: 중첩된 배설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 탐색

총추를 통한 체계적 검증: 생태학적·기호학적 증거들의 수집과 분석

범추를 통한 통합적 해석: 생명의 기호학적 의미 도출



범추(Omniduction)의 특징


정의: 직추, 귀추, 총추를 맥락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합하는 통합적 추론 체계. 인식 주체의 전인적 역량을 활용하는 '사고의 생태계'.


핵심 원리:

다차원적 인식의 동시 작동

논리와 직관의 변증법적 통합

맥락 의존적 추론 전략 선택


동양적 특징:

분별과 무분별의 자유로운 전환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상관성 인식

이성과 감성, 몸과 마음의 통합적 활용



4.2 기호학적 해석의 출현

20250706_0520_Time-Lapse Forest Encounter_simple_compose_01jze3xx2qf3cbgzeqn4v2eky6.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범추적 사고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을 넘어서는 해석에 도달했다. 중첩된 배설물은 더 이상 우연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기호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삵과 너구리는 직접적인 충돌 대신 시간차 기호 교환을 통해 소통하고 있었다. 이는 퍼스의 기호학에서 말하는 인덱스(index)⁶가 심벌(symbol)로 전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순한 존재의 흔적이 의미의 교환 매체가 된 것이다.



5. 생각하는 리듬: 인식론적 반성

5.1 추론의 생태학

20250706_0444_Neural Forest Transformation_simple_compose_01jze1v980erk85kff5atka4rb.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이번 탐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사고 자체도 하나의 생태계라는 점이다. 마치 삵과 너구리가 같은 공간을 시간차를 두고 이용하듯이, 우리의 인식 방식들도 상황에 따라 주도권을 바꿔가며 협력한다.


직추는 문제의 발견자이고, 귀추는 가설의 생성자이며, 총추는 검증의 실행자이다. 그리고 범추는 이들을 조율하는 지휘자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인식론적 분업과 통합이야말로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5.2 동양적 사유와 서구적 논리의 만남

20250706_0522_East Meets West Harmony_simple_compose_01jze4143fe2g93jyq8fk9f5g3.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범추는 서구의 분석적 사고와 동양의 직관적 사유를 억지로 결합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원래부터 통합되어 있던 인식 능력을 인위적으로 분리했던 근대적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범추는 주희(朱熹)의 격물치지(格物致知)⁷나 왕양명(王陽明)의 지행합일(知行合一)⁸과 같은 동양적 인식론을 넘어선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의 기학(氣學)의 경험적·실재론적 인식론과 유사성을 보여준다. 범추는 이러한 동서양의 인식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21세기적 문제 해결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의 기학(氣學)의 인식론과 주희, 왕양명과의 차이

20250706_0522_Breath of the Forest_simple_compose_01jze419atf2m9y4q9e8gqt3t2.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주희(朱熹)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왕양명(王陽明)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은 동아시아 유학에서 대표적인 인식론적 논의로, 각각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완성한다”와 “앎과 행함이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는 인식과 실천의 관계를 중시한다. 이들은 모두 마음(심, 心)과 도덕적 수양, 내면의 본질 탐구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인식의 주체와 방법,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차이를 보인다.


혜강 최한기(惠岡 崔漢綺)의 기학(氣學)에서 인식론은 이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 경험적·실재론적 인식론


최한기는 인식의 출발점을 외부 세계의 객관적 실재에 두었다. 인간의 인식은 감각기관(제규, 諸窺)을 통해 외부 사물과 접촉(제촉, 諸觸)함으로써 시작된다고 보았으며, 인식 이전의 상태를 백지(白紙)로 비유했다. 이는 경험을 통해 인식이 이루어진다는 실재론적 경험론에 가깝다.


• 신기(神氣)와 인식 주체


인식의 주체는 ‘신기(神氣)’로, 이는 전통 유학의 ‘심(心)’과 달리 물질적·기적(氣的)인 존재로 파악된다. 최한기는 인간의 신기가 정신 작용의 주체라고 보았고, 마음(심)만을 강조하는 성리학이나 양명학과 달리, 신기를 통해 외부 세계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 경험과 추측(推測)의 결합


최한기는 경험(감각적 지각)과 추측(합리적 추론)을 인식의 두 축으로 보았다. 경험을 통해 얻은 구체적 사실에서 출발해, 미지의 영역을 추측함으로써 더 깊은 인식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이때 추측은 이미 아는 것에서 미지의 것을 미루어 짐작하는 과정이며, 이는 퍼스의 귀추법이나 예측(prevoir) 개념과 유사하다.


• 현상과 실재의 연속성


최한기는 현상과 실재의 간극이 거의 없다고 보았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 자체가 곧 실재의 한 양상이며, 인식은 현상에서 실재로 나아가는 연속적인 과정으로 파악된다. 이는 서양 근대철학의 이원론(데카르트식 심신 이원론)이나 형이상학적 본질주의와 구별되는 점이다.


• 과학적·실용적 지식 중시


그의 인식론은 도덕적 수양이나 내면의 본질 탐구보다는 자연, 인간, 사회의 객관적 성질과 법칙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이는 서양 근대 과학과 유사한 인식론적 전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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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기 기학의 인식론적 혁신

20250706_0444_East-West Philosophical Fusion_simple_compose_01jze1vrngenzv3f7mt845hqt4.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최한기의 기학적 인식론은 전통 동양철학의 근본적 한계를 넘어서는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준다. 주희와 왕양명이 여전히 도덕적·내면적 완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최한기는 객관적 현실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인식론을 제시했다.


특히 그의 '경험 + 추측(推測)' 방법론은 현대의 귀추법(abduction)이나 가설연역법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보이며, 이는 21세기 범추(凡推) 개념의 동양적 뿌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법은 동서양 인식론의 통합 가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철학적 자산으로 평가된다.


이 이외에 여러 가지 이유들로 다산 정약용보다 혜강 최한기가 더 우수하다고 보는 철학자들도 있다.



결론: 똥 위에 똥으로 쓰인 생각의 언어

20250706_0444_Signs of Living Nature_simple_compose_01jze1vf9ne88s6v6as8ve4zek.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소요산에서 발견한 중첩된 배설물은 단순한 자연 관찰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고하는 방식 자체를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텍스트였다. 삵과 너구리가 시간차를 두고 같은 장소에 흔적을 남기듯이, 우리의 추론 방식들도 서로 다른 시점에서 같은 문제에 접근하며 의미를 중첩시켜 나간다.


모든 선언은, 똥 위에 똥으로 쓰인다.


이 문장은 은유가 아니라 인식론적 사실이다. 우리의 모든 판단과 해석은 이전의 경험과 사유 위에 덧씌워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창발한다. 이것이 바로 범추적 사고의 본질이며, 생각하는 리듬의 정체이다.


우리는 처음엔 직감적으로 느꼈고, 다음엔 가설적으로 추론했으며, 그다음엔 체계적으로 검증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통합하여 하나의 생태학적 해석에 도달했다. 그 해석은 생물학을 넘어 기호학으로, 자연 관찰을 넘어 존재론적 성찰로 확장되었다.


그것은 생존의 언어였고, 리듬의 문장이었다.

20250706_0445_Forest Survival Symphony_simple_compose_01jze1vy06e29rct3ptz45zye8.png © Dokyung Kim | CC BY 4.0 | Attribution required



미주

¹ Peirce, C. S. (1931-1958). Collected Papers of Charles Sanders Peirce, Vols. 1-8. Harvard University Press. 특히 Vol. 5의 추론 이론 관련 논의 참조. https://www.hup.harvard.edu/catalog.php?isbn=9780674138001

² Merleau-Ponty, M. (1945).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Gallimard. 한국어판: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역, 문학과 지성사, 2002. https://doi.org/10.4000/alter.1571

³ Peirce, C. S. (1903). "Pragmatism as the Logic of Abduction", in Collected Papers, Vol. 5, pp. 180-212. https://www.commens.org/encyclopedia/article/paavola-sami-abduction

⁴ Hegel, G. W. F. (1807). Phänomenologie des Geistes. 한국어판: 『정신현상학』, 임석진 역, 한길사, 2005.

⁵ Dewey, J. (1938). Logic: The Theory of Inquiry. Henry Holt and Company. https://archive.org/details/logictheoryofin000dewe

⁶ Peirce, C. S. (1867-1893). "On the Algebra of Logic: A Contribution to the Philosophy of Notation", American Journal of Mathematics, Vol. 7, No. 2, pp. 180-196. https://www.jstor.org/stable/2369451

⁷ 朱熹 (1130-1200). 『근사록(近思錄)』, 격물치지론 관련 논의. 한국어 참조: 김충열 역주, 『근사록』, 소나무, 2007.

⁸ 王陽明 (1472-1529). 『전습록(傳習錄)』, 지행합일론. 한국어 참조: 정인재 역, 『전습록』, 을유문화사, 2016.


참고문헌

『19세기 한 조선인의 우주론』, 혜강 최한기, 손병욱 역주, 도올 김용옥 서문, 2004, 통나무

『세계철학사 2: 아시아세계의 철학』, 이정우, 2018, 길(도서출판)

『혜강 최한기 연구』, 이우성, 손병욱, 허남진, 백민정, 권오영, 전용훈, 2016,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사람의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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