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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생과 사의 갈림길

by 법의 풍경

현실의 첫 번째 충격


"가슴 한가운데를 짓누르고 쥐어짜는 느낌이 너무 아파요!”

응급실 자동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외친 내 목소리가 하얀 복도에 메아리쳤다. 드라마에서는 응급환자가 오면 의료진이 들것을 가지고 달려오는데, 현실은 달랐다. 대신 경비 아저씨가 나를 붙잡았다.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접수부터 하셔야죠.”
죽어가는 사람도
줄을 서야 하는 건가.

접수대까지 가는 10미터가 100미터처럼 느껴졌다. 각 걸음마다 가슴속 무언가가 터지려는 것 같았고, 호흡은 점점 더 가빠졌다.

“신분증 가져오셨어요?”

접수 직원의 기계적인 목소리. 이 순간에도 행정 절차가 우선이었다.

“못 가져왔는데요. 급해서…”
“그럼 주민번호 말씀해 주세요.”


코로나19 시대의 일상이 응급상황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체온 측정, 해외 방문 여부, 확진자 접촉 여부.

내 가슴은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데,

방역 수칙이 더 중요했다.

이것이 2020년 3월의 현실이었다.



의료진의 눈빛이 바뀌는 순간


마침내 응급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소독약과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고, 어디선가 삐삐 거리는 기계음이 생명의 리듬을 연주하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간호사가 달려왔다.

가슴이 너무 아파요.
왼팔도 저려요.

방사통.


그 단어를 들은 순간 간호사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치 암호를 해독한 사람처럼.

“의사 선생님! 급성 흉통 환자요!”

갑자기 여러 명의 의료진이 몰려들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인턴, 경험 많아 보이는 간호사,

그리고 급하게 걸어오는 응급의학과 의사.

순식간에 나는 의학 드라마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통증의 정량화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한 시간 전쯤부터요.”
“통증 정도는 어떠세요? 10점 만점에?”
“9점이요. 아니, 10점.”

실제로 그랬다. 이런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다. 고통에도 이런 절대적 등급이 있다는 것을.

“왼팔 저림이 있다고 하셨죠?”

인턴이 내 왼팔을 만져보았다.

“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방사통이네요.”

그 순간 의료진들의 눈빛이 더욱 심각해졌다.

나는 방사통이 뭔지 몰랐지만,

그들의 표정으로 봐서는 죽음을 향한 신호탄이었다.



옷을 벗는 것도 생존을 위한 투쟁

“심전도 찍어보겠습니다. 윗옷 벗어주세요.”

양팔에 이미 수액선이 연결된 상태에서 단추가 없는 옷을 벗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냥 가위로 잘라주세요.
“네?”
“옷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빨리 잘라주세요.”


간호사가 가위를 가져왔지만,

생각보다 잘 잘리지 않았다.

다소 두터운 면 소재였던 것이다.

“응급실에 갈 때는
가위로 잘 잘리는 옷을 입어야겠네.”

농담 같지만 진심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엉뚱한 생각이 드는 게 인간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생각이야말로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을지도.



심전도, 심장의 전기적 고백


드디어 옷이 벗겨지고 차갑고 끈적한 전극들이 가슴 곳곳에 붙었다. 마치 내 심장이 세상에 자신의 비밀을 고백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심전도 기계에서 삐삐 거리는 소리가 났고, 긴 종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종이 위에는 내 심장의 절규가 파형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의료진들이 그 종이를 보더니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침묵이 더 무서웠다.

어… 심장이 너무 안 뛰어요.


인턴의 당황스러운 목소리.

“분당 몇 회예요?”
“50회요.”


응급의학과 의사가 다가와서 심전도를 다시 봤다.

“평소에도 이렇게 늦게 뛰었나요?”
“네, 운동을 해서 그런가 봐요.”
“아, 운동선수형 심장이네요.”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모르핀, 기대와 현실의 간극


모르핀, 모르핀, 빨리 가져와.

흰 가운을 입은 인턴으로 보이는 젊은 의사의 다급한 지시였다.


모르핀? 그 유명한 마약성 진통제?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 영화에서, 소설에서만 보던 그 약물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건가?


주사가 들어갔다. 기대와 달리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환상적인 경험을 기대했는데, 그냥 주사일 뿐이었다. 통증도 크게 가라앉지 않았다.

“별로 안 듣네요.”
“그럼 더 드릴게요.”

하지만 두 번째 모르핀도 별 효과가 없었다.

급성심근경색의 통증은 마약으로도 쉽게 굴복하지 않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모르핀이 그나마 통증이 더 심해지는 걸 막았나 보다. 보통 통증이 심해져 기절한다고 하던데 나는 정신은 멀쩡했으니...



선고


심전도 결과 나왔습니다.


의사가 긴 종이를 들고 왔다. 그 위에는 기묘한 파형들이 그려져 있었다. 내 심장의 최후 진술서.

“II, III, aVF에서 ST elevation이 관찰됩니다.”
“그게 뭔 뜻이에요?”
급성심근경색입니다. 우관상동맥이 막힌 것 같네요.
세상이 멈췄다.


예상했던 말이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마치 사형 선고를 받는 것 같았다. 급성심근경색. 심장마비.

죽을 수도 있는 병.

“확실한가요?”
“네, 확실합니다. 지금 심혈관내과에 연락해서
응급 시술 준비하고 있어요.”



법률가의 마지막 직업병


“급성심근경색으로 응급 시술을 해야 합니다.
시술 전에 동의서를 받아야 해요.”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 때처럼 두 장의 서류가 앞에 놓였다. 하지만 이 서류는 내 생명과 직결된 것이었다.

변호사로서의 직업병인지, 힐끗 내용을 봤다.


대략 ’시술이 잘못되더라도

의사와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

‘이런 식의 동의서 작성은 궁박한 나의 상태를 이용한 불공정한 법률행위로 무효야.’

내심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서명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명하지 않으면 죽고,

서명해도 죽을 수 있지만 살 가능성은 있었다.


죽음 앞에서도 변호사는 변호사였다.



이동, 마지막 여행의 시작


서명을 마치자 분주함이 시작됐다.

시술실로 이동합니다!


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장의 형광등들이 빠르게 지나갔고, 복도의 소음들이 스쳐 갔다.

마치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여행처럼.

“가족분은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아내의 얼굴이 점점 멀어져 갔고,

시술실 문이 내 앞에서 열렸다.

이제 정말 시작이었다.

죽음과의 마지막 담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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