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에 들렀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집을 사고 파는 부동산 앱을 떠올리겠지만 그 다방 맞습니다 카페가 아닌 다방
"다방 가볼래? " 회사 팀장님께서 점심을 먹고 난 뒤 대뜸 말씀하시더군요 아 지금 생각해보니 대뜸이 아니었겠네요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은행나무 낙엽이 혹은 볼에 자국을 남기는 가을 바람이 팀장님을 그리 이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 부근에는 아주 옛날 풍경의 여인숙이나 여관도 쉽게 볼 수 있는 동네여서 다방도 위화감 없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팀장님은 이미 몇 번을 가보셨고 저는 밖에서만 몇 번을 봤던 곳이었죠
술을 먹고 오르내리다가는 골로 가기 딱 좋은 다소 높은 폭의 계단을 올라 2층 다방 문을 열었습니다
요즘 말로 레트로 한 눈에 들어오는 촌스러운 풍경이 왜 그렇게 좋던지요 양철 주전자를 올려놓은 난로 기하학적 문양인지 꽃 그림인지 모를 무늬가 새겨진 소파 부리부리한 눈보다 늘 사나운 눈썹이 먼저 들어오는 달마도 그림 그리고 주문을 받는 주인 아주머니의 파란 아이섀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다방이었습니다
거기다 하나 더 좌석 벽면마다 빼곡히 시가 적혀져 있더군요 사인펜으로 삐뚤빼뚤 정성껏 쓴 것 같지도 않은 날린 글자체 그러나 그냥 지나치기에는 심오한 그리고 멋들어진 시가 곳곳에 보였습니다
주문하지 않은 커피도 마셔보라고 가져온 파란 섀도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사장님이 쓰신 거예요?" "아니요 저도 몰라요 삼십 년전부터 이랬대요 저도 전 주인한테 들었어요"
앉은 자리 바로 뒤에 있던 시 한 편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연탄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냐 안도현 시인의 시가 생각나기도 해서 구글에 시 문장을 검색해보니 이런 시는 없더군요
그렇다면 이름 모를 무명 시인이자 천재 시인이 들렀거나 아니면 어느 감성적인 손님이 알고 있는 시를 짜깁기 한 것일수도 있겠죠 아무려면 어떤가요 '인간아' 가 무척 마음에 듭니다
[ 인간아 작은 불빛을 투정하지마라 네가 남을 위해 언제 빛이 되어본적이 있느냐 인간아 눈물 글썽이는 게 궁상맞다고 비웃지 마라 네가 남을 위해 언제 울어본적이 있으냐 인간아 불꽃이 시원치 않다고 탓하지 마라 네가 언제 그 만큼이라도 남을 위해 뜨거워 본 적 있으냐 ]
눈치 안보고 거칠게 꾸짖는 것이 공손히 두 손을 앞으로 모아야 할 것만 같습니다 메아리로 '이 화상아', '이 원수야'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인간아 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앉은 자리가 명당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제가 앉은 자리 왼쪽, 고개를 돌리면 손가락 한 뼘 되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던 두 줄의 문장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