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3년 차 가드너다
3월 중순에 폭설이라니. 서울 기준 역대 가장 늦은 대설특보를 동반한 꽃샘추위가 몰아치면서 봄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던 꽃들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며칠간 노심초사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꽃샘추위와 폭설이 지나가자마자 정원 꽃들의 상태를 바로 확인해 보았다.
가장 걱정이었던 꽃은 엔들레스 섬머 수국. 연두색의 새로운 눈을 한창 키우고 있던 이 친구가 갑작스러운 추위와 폭설로 꽃눈이 다 얼어 버리면 올해의 수국 농사도 끝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3월 초에 벗겨낸 방한 부직포를 급하게 다시 덮어 주었다.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부직포를 들어낸 후 확인해 보니, 다행히 초록의 눈들이 상하지 않고 반짝반짝한 모습. 이대로 6월 초여름까지 쑥쑥 큰다면, 작년과 비슷한 정도의 수국꽃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튤립은 폭설 전에 10센티 이상으로 꽤 크게 성장한 아이들이 있었다. 과연 이 튤립들이 눈에 덮이고서도 얼어 죽지 않고 무사할 것인가? 가드닝 3년 차가 되어 가는 동안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눈이 녹은 후, 추위에 강한 튤립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키를 더 올리며 누구보다 든든하게 봄 정원의 단단한 초록을 담당하고 있다.
튤립보다 개화가 빠른 수선화도 걱정 한가득은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의 야생화 중 개화가 가장 빠른 수선화 '딕 와일든'은 이미 꽃대도 올리고 있었다. 큼지막하게 자라난 수선화의 잎과 꽃대가 추위와 폭설에 녹아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잠시. 추위가 지나가자마자 보란 듯이 꽃봉을 더 키우며 오늘내일 개화를 앞두고 있다. 역시 튤립만큼 추위에 강한 봄의 전령사 다운 모습이다.
장미도 큰일이었다. 3월 중순 가지치기 후 눈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성미 급한 녀석들은 벌써 잎을 만들고 있었다. '마지막 꽃샘추위가 지난 후 가지치기를 했어야 했나', '내가 너무 급했어' 등등 온갖 번뇌지옥에 빠졌던 며칠. 다행히도 장미의 새로운 눈과 잎은 모두 안전. 그리고 전정을 한 가지들도 까맣게 타들어가는 증상 없이 3월의 꽃샘추위를 무탈하게 넘긴 듯하다.
앞으로의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이처럼 갑작스러운 폭설과 극심한 꽃샘추위는 이제 진짜 끝. 이제 3월의 예정된 가드닝 일정을 마무리할 순간이다. 3월의 굵직한 가드닝 노동 두 가지는 지난 일기에서 언급한 장미와 수국의 가지치기와 이번 일기에서 다룰 비료 주기다.
3월 이맘때의 적절한 비료는 장미와 수국이 3월부터 5월까지 잎과 가지를 무럭무럭 올려, 5월과 6월의 풍성한 개화를 가능하게 해 준다. 그 후 6월 중하순에 꽃피느라 고생한 장미와 수국에게 다시 한번 비료를 투입하면, 장미는 기력을 보충하며 7월의 여름개화를 준비하고 수국은 내년에 꽃을 만들 영양분을 천천히 비축한다.
수국은 이렇게 6월에 비료를 주는 것으로 한 해의 비료를 마감한다. 하지만 장미는 가을 개화와 월동 준비를 위해 9월에 다시 한번 더 비료를 준다. 즉 장미는 3월, 6월, 9월에, 수국은 3월과 6월에 비료를 주는 것이 한 해 동안의 비료주기 스케줄이다. 특히 3월의 비료는 봄과 초여름 장미와 수국의 풍성한 메인 개화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비료이니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가드닝의 기본이라 생각하고 꼭 챙겨야 한다.
이에 따라 장미에게는 장미 전용 유기질 비료인 '로즈골드'를, 엔들레스 섬머 수국과 목수국에게는 수국 전용 비료는 아니지만 특히 수국에게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는 또 다른 유기질 비료 '프로파머스'를 각각 뿌려 주었다.
그리고 다 주고 남은 비료는 초화들에게도 슬슬 뿌려주었다. 어떤 분들은 초화들에게 비료를 주면 너무 웃자라 버린다고도 하지만, 유기질 비료 몇 알씩을 공급해 정원의 흙도 좋게 만들 겸, 장미와 수국에게 주고 남은 소량의 비료를 처리하고 있다.
3월 가드닝의 큰 행사, 가드닝 한 해의 밑그림 그리기 가지치기와 비료 주기를 마치고 돌아보니, 숙근 야생화들의 새싹이 마구 솟아나 마당 여기저기에 어느새 초록이 시나브로 번져 가는 중이다.
큰꿩의비름의 동글동글 고무질 같은 새싹은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식물의 싹이 올라올까 감탄스러울 정도로 매년 볼 때마다 신기하다. 톱풀 러브 퍼레이드의 새잎은 단단한 칼날 같은 모습이지만, 서양톱풀의 새잎은 부들부들한 깃털 같은 모습이다.
베로니카 로열블루와 꼬리풀 퍼스트 글로리는 비슷한 듯 다른 듯 동그란 작은 잎을 빠르게 키워나가고 있고, 숙근 세이지도 타원형의 작은 새잎이 하나 둘 나오나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몸집을 키우고 있다. 작년에 반쯤 정리한 부추 같은 차이브도 공모양 꽃을 피우기 위해, 또 나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열심히 몸집을 키우고 있다.
반음지의 매발톱은 잎을 돌돌 말며 세상으로 나오는데, 아직은 봄날의 공기가 수줍은 듯 여린 모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훌쩍 커 버린 녀석은 숙근 제라늄 버시 컬러다. 올망졸망 하얀 꽃잎에 보라색 줄무늬가 특징인 이 꽃은, 여름까지 계속 품을 키우며 앙증맞은 꽃그림을 정원에 그려줄 것이다.
지피펠렛에서 포트로 옮긴 팬지와 비올라, 그리고 페츄니아가 부모의 품을 떠날 만큼 덩치를 키웠다. 3월 하순 정도의 기온이면 마당에서 살기에도 충분한 날씨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팬지와 비올라도 몇몇 있어서, 이 친구들은 제대로 된 집으로 이사시켜 주었다. 화분과 노지에 자리 잡은 팬지와 비올라는 앞으로 덩치를 더욱 키워, 지금부터 장마 전까지 수십 송이의 꽃을 피워내며 정원을 책임져준다.
봄의 아지랑이처럼 새순이 터져 나오고, 꽃이 피기 시작한다. 나의 마음과 정원을 데우는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아른거리는 봄 햇살과 함께 하나 둘 번져나가는 형형색색의 꽃잎과 초록의 물결을 보고 있으면, 나의 작은 정원은 어느새 현실을 벗어난 노스탤지어가 된다. 이렇게 나만의 천국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5년 3월 16일~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