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은 경계였다

하나의 선택지

by 숨 Breath

3부 1막 남아있는 진동


<하나의 선택지>


‘내가 너무 의미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쯤 SNS를 통해 간접적인 소통이 있었다.


우연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굳어진 이 관계를 풀어보려는 마음과 그렇게 단호하지만은 않은 마음을 비추기 위한 표현이었다.


표현이 어려웠던 네가 쉽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또한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 다가갈 수 없었다.




흐르는 시간 무색하게 몇 년이 지나도 너도, 나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졌다. 모호한 흐름 속에서 혼자 감정을 해석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지쳐갔다.


착각이었을까.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간접적 그리움과 거리감이었다. 네가 보였던 그리움에 함부로 확신할 수 없는 나는 상실의 경험이 있었다. 네가 두었던 거리엔 수많은 불안과 추측이 찼고, 침묵은 오해를 샀다.


기다렸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선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그 무게감과 피로감이 부담이었다.


감정의 불균형 속에 자신을 잃어버렸던 기억이, 나를 버렸던 너를 믿을 수가 없는데, 밀어냈던 너를 기억하는데, 무엇을 믿고 움직일 수 있을까.


내게 맡겨진 것 같은 관계가 무거웠다. 먼저 이해하고, 다가가야 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관계는 이젠 버겁다. 아무 변화 없이 그때로 돌아간다면 결과는 같을 거로 생각했다.


이런 모습들이 크게 보여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어떤 관계에서도 내 감정을 무시하면서까지 무리하고 싶지 않다. 존중이 있는 관계를 원한다. 기울지 않은 균형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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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한다. 그리고 또 어려워한다. 믿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다. 기다렸다. 오지 않는 너를. 혼란은 불안을 부르고, 멀어짐에 대한 두려움과 아픔이 떠올라 방어기제로 너를 밀어냈다.


안정이 중요해진 나는 너를 미워하진 않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멀어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또 한 번, 보이지 않은 만남과 멀어짐이 반복되었다.


회피가 회피를 부르고, 말하지 못한 진심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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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에 기다리지 않았던 비를 기다리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내릴 것 같은 비는 오지 않았다. 공기는 습하고 불쾌한 늪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단절은 해방이 아닌 고통을 감수한 선택이었다. 끊을 수 없는 사람을 끊어야 했던 경험. 그날을 기억한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해 8월 마지막 밤. 장맛비에 때에 맞지 않은 얇은 카디건을 걸친 그날. 서늘한 공기 때문이었을까, 서늘해진 마음 때문이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은 잦아들 이유를 찾지 못하고.


과거의 복기와 미래의 후회를 지나 마음을 먹었다. 너와 멀어지기로.


멍해진 시선으로 신호등을 바라보지만, 그 밤 나는 아무것도 눈에 담지 못했다. 우산을 든 손끝으로 내리는 빗줄기의 힘이 느껴졌다. 반복되던 진동이 나를 달래는 것 같았다.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우산으로는 막지 못한 다른 비가 내리고 있었거든. 두근거릴 때마다 명확히 들리는 소리는 더는 미룰 수 없다며. 그 연약한 연결을 끊어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야 내가 아프지 않을 거라고.


아직도 너를 향해 흘릴 눈물이 남았나 싶었지만, 마치 어제 너를 잃은 사람처럼 울기에 충분했다. 아무에게도 털지 못한 이 감정이, 이 시간이 외로워 그 슬픔을 더했다. 옳다고 생각한 결정이지만 미안했다.


내가 너에게 갈 수 없었던 이유처럼, 너 또한 너만의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다름만 더 깊게 새겨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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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너는 사라져 버렸다. 타격이 좀 있었다. 아마 너는 내게 그 당시에 대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네가 꿈에 나왔다. 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너를 만났다. 너의 눈빛은 나를 밀어낸 적이 없었던 것처럼, 거리감이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꿈은 잊고 있었던, 잊어야 했던 어렴풋한 너의 의미가 상기되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연락했다. 답은 없었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한 번은 해야 했다. 오랜 시간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기 싫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의사를. 늦었다는 의사를. 대답이 없는 답의 의미를. 비겁하게도, 이미 방어를 세웠을 너에게 가진 후회에 대한 마침이 필요했다.


연락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틀을 깬 것에 대해 묘한 시원함도 느꼈다. 비록 늦은 용기였지만 말이다. 타이밍이 좋았을 때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걸 아쉬움을 느꼈다.


너는 간접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전했고, 불확실한 것들이 조금은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쉬움에 남은 감정들을 일부 보였다. 내가 돌아섰던 이유는 결코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고, 그리움은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라도 너의 편인 마음이 있다고 전하고 싶었다. 만약 내가 영향이 있었다면, 네가 조금이라도 덜 상했으면 했다.




내가 바라는 건 결코 큰마음이 아니었다. ‘미안했다.’라는 그게 어렵다면 ‘잘 지내.’라는 한마디. 눈에 보이는, 실체 있는 한마디면 되었을 거다.


다시 믿고 노력할 수 있는 기반을 바랐다. 욕심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더는 불안과 혼란의 반복이 내게 영향을 주길 원하지 않았다. 그때의 단절은 나의 경계였다. 나를 선택했다.


놓인 현실과 현재 가진 생각들이 너를 외면해 갔고, 행동 없는 너의 마음들은 불편해져 갔다. 수없이 반복되는 갈등과 혼란의 밤을 지나, 소란스럽지만 조용히 정리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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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택지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2권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