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닝(西宁)에 간 진짜 목적은 장예(张掖)로 가는 고속철을 타기 위해서였다. 반나절 머문 시닝에서는 이슬람 사원 동관청진대사(东关清真大寺)를 보고 먹자골목 모자지에(莫家街)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시 시닝역으로 가서 맡겨 놓은 짐을 찾고 장예로 가는 기차를 탔다.
시닝역. 고속철이 서는 중국 대도시의 최신 역사는 공항급이다. 으리으리한 규모, 바닥에 얼굴이 비칠 만큼 삐까번쩍... ⓒ위트립
기차 창밖은 노란 유채밭이 쉴새없이 펼쳐졌다. 7월의 마지막날, 한여름에 만발한 유채라니. 몇년전 윈난 갔을 때 1월에 유채꽃을 본 적이 있다. 하이라얼과 만주에 갔을 때는 8월에도 유채꽃을 봤다. 1월부터 8월까지 유채꽃을 볼 수 있는 나라라니...
기차 밖 풍경, 8월의 유채밭을 지나며 ⓒ위트립
장예서역에 도착했다. 버스로 6시간 거리라는데 고속철을 타니 2시간이 안 걸렸다. 이제 까오티에(고속철)는 중국의 모든 도시를 축지법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20시간씩 밤기차로만 가던 거리를 3시간만에 주파해 버린다.
장예서역은 시 외곽의 벌판 한가운데 있었다. 시내까지 택시를 탔는데 젊은 여자 기사가 자기 택시로 ‘칠채산 대절 관광’을 하라며 타고가는 내내 호객을 했다. 구글의 음성 번역 기능을 어찌나 잘 쓰던지, 자기 폰에 중국말로 하면 영어로 영역되고 그걸 내게 보여주는 식이었다. 중국은 날마다 새로 깔리는 고속철의 하드웨어만 발전하는 게 아니었다. 신문물 디지털 앱을 쓰는 인민들의 소프트웨어 역량도 걸맞게 성장하고 있었다.
실크로드 답사를 준비하다보면 하서주랑이란 단어를 만나게 된다. 한무제가 유목민 흉노를 토벌하던 당시 한나라 땅이었던 란저우를 넘어 ‘무위(우웨이), 장액(장예), 주천(지우촨), 둔황’에 하서사군을 세워 서역 쪽 근거지를 마련한 데서 유래한다. 기련산맥을 따라 난 좁고 긴 길을 따라 네 개의 오아시스 도시가 차례대로 펼쳐진다고 하여 하서주랑 또는 하서회랑이라고 한다.
그 중 장액(장예)와 무위(우웨이)를 따로 지칭할 때 ‘금장예 은우웨이(金张掖 银武威 금장액 은무위)’라고 한다. 우웨이보다 장예를 더 쳐준다는 뜻인데 장예가 금장예로 대접받는 건 단하지모의 경치를 가진 칠채산(七彩山치차이산) 덕분이다. 내가 장예를 들른 건 칠채산을 가기 위해서였다.
칠채산 ⓒ위트립
단하지모(丹霞地貌)란 붉은색 사암과 역암의 침식 과정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을 말하는데 중국의 지질학자가 최초로 명명했다고 한다. 붉은색을 띄는 기암괴석에 ‘붉은 노을'이란 뜻의 '단하'를 붙여 '붉은 노을 지형'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만든 것이다. 중국 사람들의 작명 솜씨에 감탄을 보낸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위트립
화성의 어디쯤??? ⓒ위트립
공식 이름인 장예단하지질공원이란 표현보다 '칠채산(七彩山)', 즉 '무지개산'이 이 곳의 특징을 더 잘 설명한다. 붉은색 사암이 퇴적되는 과정에서 여러 색을 띠는 광물 성분이 색깔별로 켜켜이 쌓여 무지개떡과 같은 지형을 만들었다.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이라 색의 대비가 강렬하다.
이곳은 중국의 사진가는 물론 한국의 풍경사진 애호가들이 애정하는 사진명소이기도 하다. 나도 인터넷에서 본 칠채산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으니까. 다시 기회가 된다면 한낮이 아닌 해질 무렵에 오리라.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방향과 순한 정도에 따라 칠채산은 황홀한 쇼를 연출할 것이다.
빙구단하의 위용. 칠채산에 밀려 다들 칠채산만 보고 간다. ⓒ위트립
칠채산에서 버스로 10분만 더 가면 빙구단하(冰沟丹霞)이다. 왜 사람들이 칠채산만 보고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빙구단하는 칠채산의 화려한 색은 없다. 마치 윈난의 웬모토림과 징타이현의 황하석림을 섞어 버무려 다시 만든 듯한 외형이다. 빙구단하는 수평 파노라마로 펼쳐놓은 칠채산 풍경과 달리 수직 돌기둥 숲이다. 마치 폐허가 된 옛 고성터에 서 있는 듯 착각이 들었고 석림 기둥 뒤로 숨은 이야기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칠채산 갔다가 장예 시내로 돌아오는 길. 차에서 한 컷 ⓒ위트립
칠채산은 단하산, 무이산, 용호산, 대금호, 자강(팔각채와 낭산), 적수와 함께 단하지모란 이름으로 유네스코자연유산(2010년)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단언컨대 그 중 어떤 단하지형보다 찬란한 색감을 자랑하는 곳이 칠채산이다. 7곳의 단하지형이 한데 모여 누가 최고인지 겨루기를 한다면 장예의 칠채산이 단연 금메달감이다.
< 장예에서 칠채산(七彩山 치차이샨)과 빙구단하(冰沟丹霞 빙고우단샤) 가는 법(2016.8월)>
- 칠채산은 한국 사람에게 알려진 지명, 정식 명칭은 장예단하지질공원(张掖丹霞地质公园 장예단샤디즈궁위안)임.
- 칠채산은 장예에서 48km 위치, 여기에서 12km 더 가면 빙구단하.
- 장예터미널(张掖汽车站 장예치처잔)에서 단샤(丹霞 단하)라고 하면 칠채산까지 바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음. 장예에서 자주 다니며 1시간 소요, 요금 11元(편도, 에어컨 안되는 낡은 시외버스)
- 칠채산 입구 큰 도로변에 내려주며 매표소까지 걸어가면 됨.
- 칠채산에서 빙구단하로 가는 버스는 자주 없으며 칠채산 입구 버스 내린 곳에서 다시 타야 함.
버스 시간은 현지에서 물어 확인해야함. 대부분의 관광객은 칠채산 관광만 하고 장예로 돌아감.
- 칠채산에서 빙구단하까지 3명이 편도 대절 택시 이용, 1대 36元(1인당 12元 지불)-흥정하기 나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