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꼭 필요지만 매우 귀한 것을 두고 말할 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하지 않나? 둔황(敦煌돈황)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냥 ‘사막의 오아시스’다. 둔황은 자연 태생도 사막에 건설된 오아시스 도시일 뿐 아니라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처럼 값진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실크로드 여행 루트와 둔황의 위치
둔황엔 보물이 유난히 많다. 사막에 깎아 조성한 석굴사원인 막고굴(莫高窟)에, 모래가 우는 산 명사산, 수천 년 동안 마르지 않는 초승달 샘물 월아천, 바람이 불면 귀신이 우는 것 같다고 해서 마귀성이라 불리는 아단 지질공원... 이런 보물 중 으뜸은 막고굴이다. 둔황에서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거대한 물성(物性)으로 만날 수 있는 곳, 막고굴으로 향했다.
장예에서 밤 12시 반 야간기차를 탔다. 자고 나니 둔황이 다가온다. 아침이라 이제야 창밖이 보인다. 기차 창밖은 도무지 땅 위 풍경 같지 않다. 마치 내가 잠수함을 타고 웬 해저지형을 지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육지식물 하나 없는 생경한 경치다. 그래도 둔황에 가까워지니 신기하게도 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 어찌 지상 풍경이라할 수 있을까? 실크로드 지역에 가면 몇 시간 동안 이런 경치만 본다. ⓒ위트립
신기하게도 오아시스 지역에 다가가면 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위트립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막고굴로 직행했다. 아침부터 걸어가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30분쯤 걸었나? 막고굴관람센터에 도착하니 매표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처음엔 줄 끝에 서 있었는데 외국인은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입장권을 끊고 나오니 밖에서 줄 서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항의했다. 우리를 중국인으로 여겼을 테니 새치기하거나 특혜를 누린 줄 알았나 보다. 우린 의기양양하게 중국인 ‘인파’를 헤치고 막고굴행 셔틀을 탔다.
막고굴의 얼굴마담 제96굴 북대불전 ⓒ위트립
외국인 매표를 따로 하는 이유는 굴 내부 채색 보존을 고려한 관람 시스템 때문이었다. 이곳은 자유관람이 불가능하고 같은 언어권 관람객 20명당 1명의 해설사를 배정해 가이드 투어 하도록 되어 있었다. 10여분 후에 한국어 가이드가 왔다. 오늘 한국인 관광객은 남편과 나 둘뿐이다. 가이드가 1시간 동안 우리 둘을 데리고 다니며 6~8개의 석굴을 열쇠로 열어가며 안내했고 해설을 곁들였다.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석굴 안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좁은 통로와 굴을 20명씩 떼 지어 다니고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들. 사람의 물결이란 이럴 때 쓰는 단어. ⓒ위트립
그동안 중국에서 중국인들에게 치여가며 기차 타고, 관광하고, 밥사먹고, 잠자면서 다녔다. 외국인이라고 안 재워주는 숙소도 있었다(중국은 내국인 전용 호텔도 꽤 있음). 어딜 가도 외국인 우대는커녕 외국인 설움(?)만 받았다. 막고굴에서 중국 여행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국인 대접을 받아 줄도 안 서고 여유 있게 관람했다. 오늘은 비싼 입장료가 하나도 안 아까운 날이다.
막고굴은 중국의 유명한 석굴들, 운강석굴(따통), 용문석굴(롱먼), 맥적산석굴(티엔쉐이)을 다 젖히고 최고로 꼽힐 뿐 아니라 보존 상태와 소장 내용에 있어서도 세계적으로 비교 대상이 없는 불교 석굴 예술의 최고봉이다. 남북조 시대부터 석굴을 만들기 시작해 천년에 걸쳐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492개의 석굴에 25,000여 점의 불상을 갖고 있으며 벽화를 떼어내서 한 줄로 이어 붙이면 30km가 넘는다고 한다.
막고굴의 관전 포인트는 벽화다. 불교 벽화부터 사신도, 농사짓거나 악기 연주, 차 공양 모습 등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벽화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양 못지않게 내용도 풍성해 벽화의 자연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 벽화 중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새의 깃털을 모자에 꽂은 조우관을 쓴 사람을 여러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가이드 투어 때 '숨은 그림 찾기'를 해봐도 되겠다.
관람로를 따라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관람한다. ⓒ위트립
이런 막고굴이 세계인을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1900년 청나라의 막고굴지기 왕위안루(王圓籙왕원록)가 16번 굴 안쪽의 곁 굴 17번 굴에서 진짜 보물을 발견한 것이었다. 한자,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위구르어, 소그드어, 몽골어 등으로 적힌 3만여 점의 경전과 문서가 나온 것인데 이 17번 굴을 장경동(藏經洞)이라고 한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있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필사본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이로써 막고굴에서 나온 불상, 벽화, 경전과 문서를 이용해 고대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역사, 종교, 문화와 예술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이 비롯되니 바로 ‘돈황학’이다.
막고굴의 장경동 발견이 해외에까지 알려지자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고고학자와 탐험가들이 한달음으로 달려왔다. 문화재의 가치를 알아본 그들에게 진짜 보물 찾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장경동의 발견자인 왕위안루는 이제 막고굴의 보물들을 팔아먹기 시작한다. 그들은 은화 몇 잎에 벽화 수십 점을 떼어가고 경서와 고문서들을 수십 궤짝씩 실어 날랐다. 영국의 오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러시아의 올덴부르크미국의 랭던 워너, 일본의 오타니가 그들이다.
장경동에서 발견된 자료와 벽화 등 수만 점이 반출되었다고 하니 한 곳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문화재 반출량도 기네스감이지 않을까? 그리하여 둔황의 보물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지게 되고 오늘날 중국의 돈황학자들은 외국의 박물관에서 둔황 문헌에 관한 마이크로필름을 돈을 주고 사와서 확대경을 들여다보며 연구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중국의 인문사학자 위치우위는 중국의 영예와 치욕이 이 굴로 인해 빚어졌다고 통탄했다.
내가 막고굴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세계지도상에 둔황 유물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였다. 막고굴에서 나온 자료를 훔쳐간 외국인들과 현재 외국 박물관에 있는 둔황의 자료들을 알려주는 전시관이 별도로 있었다. 전시된 세계지도를 보다가 둔황 유물의 보유국 중에 우리나라도 속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1000년에 걸쳐 이 석굴을 다녀간 승려와 화가와 도공과 석공들의 시간과 당대의 지혜를 가두어둔 모래성의 타임캡슐
일본의 오타니 원정대에 의해 둔황 일대에서 반출된 유물 1,700점이 일제 때 서울의 조선 총독부 건물에 보관되다가 독립과 더불어 우리나라로 귀속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중 20여 점이 돈황 유물이라고 한다. 내가 훔치지도 않았는데 장물이 내 주머니에서 나온 꼴이다. '난 죄가 없다구...' 졸지에 둔황 자료 소지국이 되어버린 우리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둔황 유물 소조 승려상 3점과 보살입상 번 3점을 포함, 154점의 오타니 컬렉션이 현재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몇 날 며칠 돈들이고 시간들이고 몸고생해서 겨우 닿는 곳 둔황까지 가서도 기껏 석굴 1시간 관람에 벽화 사진 한 장 건져오지 못했다. 이렇게 보기 어려운 둔황의 보물을 내 나라 서울에서 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가성비 있는 문화재 답사가 또 있을까? 당장이라도 보물찾기 하러 박물관으로 가야겠다.
※ 참고문헌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p265, 316
《중국문화기행》위치우위 p83
《ENJOY 중국》 고승희 p845
< 둔황역(敦煌站)에서 막고굴(莫高窟) 가기(2016. 8월) > - 장예역에서 탄 밤기차는 둔황역에 내려줌. - 둔황역에서 막고굴 디지털 관람센터까지 도보로 갔으나 걷기엔 좀 무리다. 택시 권장 - 막고굴 관람은 시스템화되어 있다. 막고굴 디지털관람센터에서 매표 -> 실내에서 영상물 관람 -> 막고굴행 셔틀버스 탑승 -> 막고굴 관람(20명씩 1조가 되어 가이드 투어해야 함. 언어별 지원 가능) -> 셔틀버스로 디지털관람센터로 돌아옴 - 막고굴디지털센터까지는 시내 버스 다님. - 입장료 220元(언어별 가이드 투어비 포함). 기본 20명 단위이나 단체인 경우 30명도 한팀으로 가이드 투어하기도 한다고 함. - 막고굴디지털센터에 짐보관 서비스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