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기차로 아침에 도착한 둔황(敦煌)에서 막고굴을 보고 나오니 오후가 다 되었다. 숙소로 갔다. 지난밤 기차에서 잠을 잔 탓에 여독도 풀고 개운하게 씻을 곳도 필요했다. 둔황 숙소는 명사산(鸣沙山밍사산) 바로 옆의 둔황산장이다.
실크로드 여행 루트와 둔황의 위치
중국이든 어디든 집만 나서면 몸과 마음이 자동으로 헝그리 정신으로 세팅되는 나는 저렴한 숙소만 골라서 잤다. 한번 길을 나서면 짧게는 보름, 길게는 30일씩 외유(外遊)하는 나로서는 숙소를 최저가로 깔지 않으면 여행경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북유럽과 몇몇 고물가 나라를 제외하면 저렴한 숙소는 세계 어디를 가도 50달러를 넘지 않는다. 중국은 생각보다 숙박비가 싸지 않은 곳이다. 1박에 삼사 만원은 줘야 제일 싼 축에 속하는 경제형 체인 호텔에 묵을 수 있다.
둔황에서 선택한 숙소 둔황산장은 이런 나의 숙박 관성을 깬 곳이다. 하룻밤에 평소 4일 치 숙박비를 물었으니 실크로드 가다 말고 때아닌 호캉스라도 떠난 걸까?
인터넷에서 숙소를 찾던 중 둔황산장에 대한 칭찬이 하도 많아 꼭 묵어보고 싶었다. 장거리 여행도 중반을 넘길 때라 이쯤 해서 쾌적한 호텔에서 재충전하고 싶었고 호캉스라 해도 좋았다. 여행길에서 쾌적함은 돈이다. 비싼 숙소를 밤늦게 들어가 잠만 자고 나오는 건 나 같은 저비용 배낭여행자가 고급 호텔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최대한 일정을 조정해 체크인 시간에 들어가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서 나오기로 했다. 본전 생각 안 나게 뿌리를 뽑을 참이었다.
둔황산장 입구, 으리으리한 고성에 잠자기 체험하러 들어가는 기분. ⓒ위트립
둔황산장은 삼국지 영화에서 봤던 옛 성처럼 우뚝 서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이토록 고급 숙소라니, 하긴 황산 산꼭대기에도 호텔을 짓는 나라가 아닌가. 외관과 달리 안은 현대식이었다. 객실에 들어서니 웰컴 과일에 웰컴 인형까지 있었다. 그것도 호텔 전화번호가 적힌 낙타 인형 두 마리라니 평소 중국답지않은 세심한 서비스에 또 한 번 놀랐다. 숙소 취재를 나섰다. 복도 벽에 카펫, 사진, 그림 등 판매를 겸한 전시를 해놓았는데 멋스러웠다. 로비 한켠에는 24시간 차(茶) 서비스와 장기판, 붓글씨 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다.
미술 전시관을 방불케했던 객실 복도. 차 서비스는 물론 장기두기, 붓글씨 쓰기 등 문화 체험 코너도 마련되어 있음. ⓒ위트립
숙소의 최대 강점은 호텔에서 명사산 전망을 누린다는 점이었다. 호텔 식당에서 본 명사산의 모래언덕 실루엣은 보는 이를 설레게 했다. 사진으로나 봄직한 사막을 보며 맥주 한 잔이라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명사산 관광을 나섰다. 숙소 뒷문으로 나와 15분쯤 걸으니 명사산에 닿았다.
명사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호텔 2층 식당 ⓒ위트립
호텔 2층 식당에서 찍은 명사산 ⓒ위트립
해가 졌는데도 아직 낮의 열기가 모래에 남아있었다. 관광객이 어찌나 많은 지 모래산의 열기를 부추겼다. 사막과 짝꿍은 낙타인가. 낙타를 탄 관광객들이 사막 위를 떼 지어 다니며 알록달록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난생처음 사막에 왔다는 감동도 잠시, 너무 많은 낙타 행렬에 짜증이 일었다.
사막은 낙타 행렬로 몸살을 앓는다. ⓒ위트립
그래도 모래능선 풍경은 사람이 있어 완성되기는 하네. ⓒ위트립
아무것도 없는 모래언덕에서 낙타 행렬은 둘도없는 사진모델이기는 하다. ⓒ위트립
필리핀에서 말 타보고 태국에서 코끼리 타 본 나는 뭔가 '놀이'로 동물을 타는 것 자체가 편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낙타 영업을 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탐방로 없이 마구잡이로 다니는 낙타 몰이꾼과 낙타 배설물로 사막이 몸살을 앓지 않을까?
여행지에 가면 분위기를 타기 마련이다. 남편이 낙타를 타고 싶어 해서 혼자 낙타 타는 곳으로 보냈다. 나는 낙타를 타지 않고도 사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발을 벗어 들고 명사산을 걸어 올랐다. 주변을 보니 걷는 사람은 나뿐이다. 맨발 걷기는 사막에서의 걷기 법이다.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흘러 넘칠 때마다 간지러울 듯 말듯한 감촉을 즐겼고 바람이 만들어놓은 사구의 미려한 윤곽선을 눈에 담았다. 한 가지 호사를 더해, 사구 능선에 올라 천년 넘게 마르지 않는 샘 월아천(月牙泉위에야취안)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이 넓은 사막에 걸어가는 사람은 이 아빠와 딸, 그리고 나 셋 뿐이었다. ⓒ위트립
애석하게도 월아천의 환상은 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월아천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인파와 소음 때문에 '천 개의 모래와 만 개의 연못도 무색케 한다'는 명사산 월아천의 감흥은 찾을 수가 없었다. 미련이 남아 다음날 새벽에 다시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형지물 하나 없이 온 사방 모래언덕뿐인 이곳에서 월아천은 경쟁상대 없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사진 핫플이었던 것이다.
월아천 ⓒ위트립
바람에 쓸려가는 모래 소리를 ‘모래가 운다’고 하여 이름도 아름다운 ‘명사산’이 이제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고 한다. 도시화와 개발로 인해 모래의 공명이 없어졌다고 한다. 월아천의 수면도 계속 낮아져 이제는 인공적으로 물을 보탠다고 한다.
명사산이 더 이상 울지 않고 월아천에 더 이상 물이 고이지 않는 데는 둔황으로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서역 교역 요충지 시절의 번성이 ‘관광 둔황’으로 재연되려는 것과 무관하지 않겠지. 순간 물 귀한 사막에서 호캉스 타령하며 호텔에서 물쓰듯 물 쓴 내가 반성되었다.
둔황시 당국은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하리라. 1일 관광객을 제한하든가 낙타 관광을 제한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명사산 안식년제'로 직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 둔황(敦煌)에서 명사산(鸣沙山 밍샤샨) 가는 법(2016.8) >
- 둔황 시내와 명사산은 시내버스도 자주 다니고 명사산은 시내에서 버스로 20분 이내 거리.
명사산 입구에 버스 정류장 있고 요금은 2元
- 개장 5시-20:30(매표 시간 기준인 듯). 첫날 저녁7시에 들어가서 10시경에 나옴.
- 요금 120元, 낙타 타기는 별도 옵션임. 낙타 안타도 맨발로 걸어다니거나 걸어서 산에 오를 수 있음.
- 명사산은 아침 저녁으로 붐빈다. 아침 7시에 가도 사람이 많음. 더 이른 새벽에 가는 것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