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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도시 투루판의 비밀, 카레즈

용광로 도시의 지하 세계 / 투루판

by 위트립

투루판(吐鲁番)은 용광로 도시였다. 펄펄 끓는 용광로였다. 차에서 내리니 낮동안 차곡차곡 모아놓은 공기의 축적열과 아스팔트의 복사열이 전방위에서 온몸을 협공해 들어왔다. 기온은 40도가 넘고 지표면 온도는 70도에 육박했다. 도로에서 70도짜리 뜨거운 난류(亂流)가 이글거리며 피어오르는 도심 전체가 건식 사우나였다.


지역도_실크로드_최종_내루트.png 실크로드 루트와 투루판의 위치


대한민국에서 제일 덥다는 대프리카 출신인 나도 투루판 공기를 한 모금 들이키다 말고 두 손을 들어버렸다.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더위는 더위도 아니었다.


투루판온도_46도.jpg 낮최고 온도 섭씨 46도라~ 최저 온도가 무려 32도....


샨샨(鄯善)에서 투루판(吐鲁番)은 옆동네다. 버스로 두 시간쯤 걸렸다. 교통빈관에 여장을 풀었다. 중국의 웬만한 도시의 버스터미널 옆엔 교통빈관이 한 군데씩 있다. 세븐데이즈(7 Days)호텔과 홈인(Home Inn)에 갔다가 다들 외국인 안 받아 준다고 해서 가게 된 곳이었다.


날도 덥고 더 돌아다닐 힘도 없어 1박에 거금 380위안(한화68,000원)을 줬다. 관광성수기라 숙박비가 비쌌다. 숙소 이름처럼 교통은 편리했다. 숙소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카레즈에 갔다.


카레즈입구_수정.jfif 카레즈 박물관격인 칸얼징 민속관 ⓒ위트립


투루판은 오아시스 도시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오아시스 도시 여러 개를 점점이 연결한 것이 실크로드이다. 그러나 거대한 오아시스 샘이나 호수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여행자 입장에선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더욱이 인구 60만 명의 도시가 쓰는 물을 천연 오아시스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연간 강우량이 20mm가 안 되는 건조한 분지 투루판이 물을 구하는 방법, 즉 투루판의 비밀은 땅 속에 있었다.


카레즈수로_수정.jfif 만리장성, 경항대운하와 함께 중국의 3대 공정 중의 하나인 지하수로, 카레즈 ⓒ위트립


카레즈_탐방로_수정.jfif 카레즈 일부를 걸어서 탐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위트립


인류 역사에서 지하 세계를 건설한 또 하나의 예가 투루판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지하 5층까지 층층이 파서 수년간 미군과 대치하고 마침내 미군을 몰아낸 일등공신 땅굴이 베트남에 있었다면, 투루판에는 지하에 기상천외한 인공 수로를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한 카레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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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즈는 2000년전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지하 수로를 건설한 이래 지금도 이용되는 물 공급 시스템이다. ⓒ위트립


투루판 서쪽 400km 밖에 있는 톈샨산맥(天山山脈)의 만년설이 녹아 흐른 물을, 사막열에 증발되지 않도록 해수면보다 낮은 지대의 지하에 우물(칸얼징 坎儿井)을 파서 가두었다. 이 우물들을 지하로 연결해서 물이 흐르게 한 '지하 수로'가 바로 카레즈다. 신장(新疆신강)에만 2,000여 개의 칸얼징이 있고 지하에 모세혈관처럼 촘촘히 얽혀 연결된 카레즈의 길이가 장장 5,000km에 달한다고 한다.


칸얼정_수정.jfif 몇몇 개방해 놓은 우물(칸얼징) ⓒ위트립


카레즈는 투루판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비밀 물길이며, 인간의 슬기로 만들어낸 생명수의 공급망이다. 한나라 기록에서 카레즈를 찾아볼 수 있다니 카레즈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그래서 '만리장성'과 항주에서 북경에 이르는 '경항대운하'와 함께 중국 고대 3대 공정(工程) 중의 하나라고 한다. 관람이 허용된 카레즈의 일부는 도구가 변변찮은 옛날에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파서 만든 것들이라 그런지 조악해 보였다. 그래도 지하 수로의 뼈대를 직접 보니 투루판의 물의 비밀이 풀리는 듯했다.


길거리로 나오니 가로수에 물을 대는 파이프가 보였다. 이제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저 물이 다른 도시처럼 인근 호수에서 끌어대는 평범한 물이 아니라 텐샨산맥의 얼음이 녹은 빙하수인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불의 도시 '화주(火州)'라고 불리는 투루판에 나무가 자라고 사람이 모여 살게 된 비결은 바로 이런 거대한 인공 물 공급 시스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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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링겔 맞듯, 가로수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물 파이프 ⓒ위트립


카레즈의 축복은 포도와 하미과였다. 샨샨과 투루판 일대는 당도 높은 포도와 하미과라는 오렌지색 멜론이 특산물이다. 달고 즙많은 포도와 말린 포도는 투루판 시내 어딜 가도 많았다. 길거리 리어카에서 파는 하미과는 깎아서 먹기 좋게 잘라주는 서비스까지 덤이었으니 수분 보충용으로 허기 방지용으로 매일 하나씩 안 먹고 지나는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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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론의 한 종류인 하미과, 투루판 동쪽의 하미시에서 많이 나는 과일이라 이름이 하미과인 듯. ⓒ위트립


해발 5,000m의 설산이 여름 동안 녹아 흘리는 땀방울을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담아 생명수로 쓰는 투루판 사람들에게 물 한 방울은 그냥 물이 아닐 것이다. 물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울인 지혜와 노동의 눈물 방울이다. 자연을 보면 자연이 위대하다. 그러나 물 한 방울 귀한 자연에 굴하지 않고 ‘그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만들어낸 인간 또한 위대하다.





여행정보(2016.8)

<샨샨(鄯善)에서 투루판(吐鲁番) 가는법 >

- 샨샨의 시외버스터미널(샨샨치처잔)에서 투루판의 시외버스터미널(투루판치처잔)로 이동

- 소요시간 2시간, 버스 요금 23元

- 샨샨에서 투루판 가는 중간쯤에 화염산(火焰山 훠옌샨 ) 볼 수 있음.


< 카레즈, 칸얼징(坎儿井) 가는 법 >

- 시내 버스 1번. 시내에서 3km. 입장료 40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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