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와 쯔란 / 투루판
시안에서 출발해 란저우와 시닝을 넘어 하서주랑을 통과해 샨샨을 찍고 투루판까지 왔다. 란저우와 시닝은 후이족의 도시였고 투루판은 인구의 약 80%가 위구르족인 곳이다. 투루판에서 나는 뭘 먹고 돌아다녔나?
란저우에서는 워낙 우육면(니우러우미엔)이 유명하고 우육면 식당이 많다 보니 우육면을 먹은 기억밖에 없다. 신강 위구르자치구인 샨샨과 투루판에 오니 국숫집도 잘 안 보이지 않았다. 투루판에서는 국수보다 빵이 많이 보였다. 날이 더우니 빵 굽는 화덕이 다들 도로변에 나와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 투루판에서 수십 개의 난로를 보탠 격이다. 각양각색의 노상 화덕에서는 얇은 난이나 피자 도우같이 납작한 빵이 연신 구워져 나왔고 고소한 빵 냄새가 투루판 거리를 채웠다.
빵 굽는 화덕 못지않게 매캐한 흰색 연기를 뿜어내며 도심의 열기를 부채질하는 장본인이 있었으니 양꼬치 화덕이었다. 후이족이든 위구르족이든 무슬림들이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요리에 돼지기름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으로 쇠고기와 양고기를 즐겨 먹는다. 란저우가 쇠고기 국물과 쇠고기 수육의 우육면의 본고장이라면 투루판에서는 양념한 토막 양고기를 꼬치에 꿰어 직화로 구워 먹는 양꼬치가 대세였다.
어둑어둑한 해거름에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매번 양꼬치 냄새가 진동하는 식당들을 통과해야 했다. 하루는 우리도 저녁을 먹으려고 노천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양꼬치와 빵을 같이 먹고 있었다. 현지인들을 따라 주문했다. 납작한 빵 몇 조각과 양꼬치가 담긴 접시가 나왔다. ‘양꼬치와 맥주’가 아니라 ‘양꼬치와 빵’이라니? 이 무슨 생경한 조합이람? 양꼬치의 단짝 맥주는 어디로 갔을까? 텁텁한 양꼬치를 더 텁텁한 빵과 먹으라고?
투루판으로 오니 양꼬치는 식사의 메인 메뉴였다. 빵은 밥이요, 양꼬치는 반찬이었다. 양꼬치는 더 이상 술안주가 아니라 위구르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위구르족도 후이족과 마찬가지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식당 메뉴판의 맥주가 빠진 자리에는 매실음료가 있었다. 양꼬치 원조 동네에선 매실음료가 양꼬치의 짝꿍 음료였다.
또 매실음료는 요구르트와 섞어 빙수로도 만들어 먹는데 이걸 '투루판 빙수'로 지칭하겠다. 얼음을 거칠게 갈고 양유(羊乳) 요구르트와 매실 음료, 설탕을 넣어 만드는 일종의 '요거트 매실 빙수'다. 투루판 사람들은 양꼬치와 투루판 빙수를 먹으며 여름을 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양꼬치는 맥주 안주’라는 오개념은 도대체 어디서 형성된 것일까? 내가 중국여행을 처음 갔던 10년 전, 샹하이의 먹거리 골목에서는 현지인도 관광객도 양꼬치를 맥주와 먹고 있었다. 그때 양꼬치를 처음 먹어본 이래 양꼬치는 중국여행 때마다 일부러 찾아다니며 먹는 음식이 되었다. 칭따오에서도 '양꼬치와 칭따오맥주 한 잔'은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의식이었다. 중국 관광지 미식 골목 어딜 가도 양꼬치 가게가 성업 중이다. 양꼬치를 맥주 안주로 먹는 건 양꼬치를 주식으로 먹는 후이족이나 위구르족과 관계없이 중국의 한족이 만들어낸 문화다.
갓 구워낸 뜨거운 양꼬치를 한 입 베어 물면 짭짜름한 맛이 입안에 퍼지며 특유의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육질은 부드럽고 입 안에서 살살 녹으며 행복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양꼬치에 뿌려진 매콤하고도 쌉싸름한 위구르 향신료 '쯔란(커민)'이 양꼬치의 맛을 올려준다. 언젠가부터 양꼬치를 먹을 때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건 바로 향신료 쯔란이다. 단언컨대 나는 양꼬치를 쯔란에 찍어 먹는 게 아니라 쯔란 맛으로 양꼬치를 먹는다.
孜然 [zīrán]
1. [명사][식물][위구르어] 쯔란. 쿠밍(枯茗). 커민. [미나리과의 식물]
2. [명사][식물][위구르어] 쯔란의 씨. [양념·향료·약용으로 쓰임] - 네이버 중국어 사전 -
중국여행에 양꼬치가 빠질 수 없지. 저녁마다 양꼬치 익는 동네 투루판에 간다면 투루판식으로 양꼬치를 먹어보길 바란다. 맥주 생각은 잠시 잊고, 빵과 함께. 매실음료나 매실빙수 투루판 빙수와 함께.
양꼬치 맛에 익숙해졌다면 양꼬치 먹기 2단계, 일명 '향으로 양꼬치 먹기'에 도전해보자. 양꼬치에 쯔란을 듬뿍 찍어 양꼬치와 쯔란의 환상 궁합을 입 안에서 즐겨보기 바란다. 여행은 그 나라의 향에 익숙해지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