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실크로드를 꿈꾸며 / 우루무치
이번 실크로드 여행의 종착 도시 우루무치로 향했다. 간쑤성에서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들어오니 유난히 검문검색이 많았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같은 신장(新疆신강)인 투루판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중에는 이중 검문을 했다. 투루판에서 버스 타기 전 검사를 다 했는데도 우무무치에 못 미쳐 전 승객을 버스에서 짐 들고 내리게 했다. 신분증과 짐 검사를 한차례 더한 후 다시 타게 했다. 대단한 위험지역에라도 들어가는 듯 살벌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신장의 허허벌판에는 풍력발전기가 유일한 지형지물이었다. 드넓은 땅이 거대한 발전소였다.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검은 땅에 하얀 풍차만 끝없이 펼쳐지는 광경이 가도 가도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거짓말처럼 풀이 조금씩 보이고 점점이 흰색 양 떼들이 나타나더니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투루판에서 출발한 지 4시간 만이다. 버스 전용 차로 비슷한 개념의 BRT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우루무치 사람들을 만났다. 순간 내가 중국이 아니라 아랍의 어느 나라에 온 듯했다. 얼굴과 손만 내놓은 채 온몸을 칭칭 휘감은 옷을 입은 여성들의 차림새도 아랍을 연상시켰다. 생김새로만 서양인과 동양인을 구분한다면 그들은 내게 서양인이었다. 바로 중국말을 하는 서양인들.
우루무치 국제 바자르에 갔다. 모스크처럼 생긴 건물에 시장의 코너마다 이슬람 분위기다. 페르시아풍 양탄자, 히잡과 모자, 이슬람풍 문양의 장식용품, 아랍 계통의 악기들을 보고 있으니 진짜 아랍 시장인가 싶었다. 언젠가 가본 적 있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아랍 지구가 오버랩되었다.
신장이 당나라 때 장안과 교류하던 서역 땅이었으니 신장의 수도 우루무치는 당시 장안에서 유행하던 호악과 호선무, 호풍의 물건과 호식들, 즉 ‘호류(胡流) 열풍’의 본거지가 아닌가. 마지막 여행지니 기념품 하나 안 사면 서운하지. 유리로 된 작은 차 주전자를 하나 사들고 시장을 빠져나왔다.
우루무치 거리에는 선전용 간판이나 벽화가 많았다. 소위 경상도식으로 말해, “우리가 남이가”에 다름 아닌 구호들이었다. 소수민족 사람들에게 민족대화합을 호소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외적인 구호로 그칠 일이 아니다. ‘수신제가’부터 먼저 해야 ‘치국평천하’한다는 자기들의 말을 곱씹어봐야 할 때다. 경제적·정치적 소외 지역인 위구르에 손을 내밀고 껴안는 것은 동서 연결이자 확장을 꿈꾸는 중국몽(中国梦)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꿰는 일이 될 것이다.
20일간의 여행이 마무리되는 우루무치에서는 비가 왔다. 국제 바자르를 돌아 나오는 길에 비가 그을 때까지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여행을 정리했다. 실크로드 여행은 몸을 혹사시키는 여행이었다. 관광은 잠시뿐 갈길은 늘 멀었다. 그 관광마저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았고 여행의 2/3는 길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실크로드 여행의 실상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한여름 땡뼡과 고된 이동의 극한 체험’이었다.
여행길은 중국이 다민족 국가, 다문명 국가임을 몸으로 배우는 과정이 되었다. 그동안 중국이란 나라를 중원 중심으로, 나도 모르게 한족의 관점으로 보는 게 당연할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간쑤와 티베트와 위구르의 변방에 서고 보니 중원이 다시 변두리가 되었다. 이번 여행은 '기울어진 각도만큼 되돌려 균형 있게 보는 연습'이 필요함을 알려주었다.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된 중국. 언제인가부터 ‘소수민족’이란 용어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부터 ‘56개의 민족으로 된 다민족 국가 중국’으로 말하련다. 그러고 보니 중국 화폐에도 중국어와 영어 외에 4개의 언어 표기가 더 있다. 몽골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장족어가 그것이다. 아마도 조선족 인구가 많았다면 한국어 표기도 있지 않았을까?
민주주의에서 부자든, 가난하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1인 1표,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듯, 중국의 각 민족이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 종교와 문화가 존중받고 지켜질 권리가 보장되었으면 좋겠다.
20일간의 여행 마지막 밤을 우루무치에서 맞는다. 실크로드는 내게 또다시 와야 할 꿈의 여행지가 되었다. 고대 실크로드는 '시안에서 시리아까지의 동서 교역길(6400km)'을 의미하고 나는 그중 핵심 코스라 할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를 다녀왔다. 아쉬움이 절절히 남았다. 허기가 채워지는 게 아니라 더 풍성하게 먹고 싶은 욕구가 강렬해져 배가 더 고파졌다.
새롭게 해석된, 고대 실크로드의 확장 코스로 불리는 가장 긴 실크로드(20,000km)로 여행을 해보고 싶다. 교토, 경주, 낙양, 시안을 거쳐, 둔황, 카슈가르, 이스탄불, 마침내 로마까지 동서를 횡단하는 그날을 꿈꾸며, 이번 여행은 맛보기 여행, 그냥 사전 답사라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