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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산 자락의 무슬림 마을과 소공탑

서유기의 무대가 된 화염산 / 투루판

by 위트립

투루판(吐鲁番)은 은근히 갈 곳이 많았다. 여름 한낮의 투루판은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로 여행자를 지치게 했지만 현지인들은 끊임없이 분주히 움직이며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우리도 여행을 이어갔다. 카레즈에 이어, 폐허로 남은 옛 고성 교하고성을 찾았고 화염산, 토욕구와 마자촌, 소공탑, 투루판 박물관을 차례로 방문했다.


지역도_실크로드_최종_내루트.png 실크로드 여행 루트와 투루판의 위치


차편이 마땅치 않아 택시를 대절해서 화염산 자락에 있다는 토욕구를 향했다. 길만 나서면 ‘가장 저렴한 여행법’을 선택하는 나는 언제나 길에다가 시간을 다 뿌리며 다니곤 했다. 하지만 이곳은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을 알 수가 없었고 투루판 더위에 여행 투지(鬪志)도 한 풀 꺾여 더 알아볼 맘도 안났다.


시내에서 토욕구를 가려면 화염산을 거쳐야 한다. 화염산 전망대 근처에 오니 차를 세워줬다. 붉은 사암 덩어리가 통으로 된 산이 이글거리며 서 있었다. 화염산(火焰山)은 불꽃산이라는 이름이 바로 산을 말해주는 곳이다.


화염산_사람_수정.jfif 이글거리는 불꽃의 연속, 화염산 ⓒ위트립


내게 산에 대한 정의를 의심케 한 산이 바로 화염산이다. 한반도에서 나고 자라 중위도 온대의 초록색 산만 평생 봐온 내게 모름지기 산이란 초록의 집합체이다. 소나무가 많은 우리나라 산은 한겨울에도 초록을 잃지 않는다. 어찌 생기의 흔적인 초록빛 하나 없는 곳에, 공상 영화의 배경 세트판같이 건전지가 직렬연결되듯 한 방향으로 늘어선 바위군에 ‘산’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화염산은 100km 동서로 차길과 나란히 늘어서 있어서 차로 달려도 한참 동안 이 이색적이다 못해 기기묘묘한 산과 나란히 가게 된다.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산은, 지금도 수많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닳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 《서유기》의 무대로 어울린다. 화염산은 마치 산 정상에서 불꽃에 녹은 촛농이 흘러내리다가 굳어진 형색이다. 불꽃과 용암이 터져 나와 흐르다가 굳어졌다면 설명이 될 그런 산세였다. 아니나 다를까 송나라 때 분출 기록이 있는 화산이란다.


여름 한낮이면 지면 온도 70도가 넘는 화염산 자락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화염산 남쪽 기슭에 토욕구(吐峪沟 투위고우)라는 물 흐르는 계곡이 있고 이 계곡을 끼고 신장위구르족 자치구에서 가장 오래된 촌락인 무슬림 마을이 있다.


화염산자락마을_수정.jfif 화염산 남쪽 기슭의 마자촌 ⓒ위트립


토욕구전경_수정.jfif 마을 꼭대기에서 본 마자촌 전경 ⓒ위트립
모스크_첨탑_수정.jfif
토욕구마을2_수정.jfif
마자촌의 모스크(왼) & 계곡 토욕구 따라 늘어선 마자촌의 황토집 ⓒ위트립


토욕구는 협곡에 불교 석굴 조각이 위치해서 붙은 지명이다. 불교국이 지배하던 시절에 불교 성지였다가 14세기 이후 투루판이 이슬람화가 되면서 이슬람 성지가 된 곳이다. 이슬람 성인으로 추앙받는 7명의 순교자의 무덤이 있어 이슬람 성인의 무덤이란 뜻의 마자(mazar)를 붙여 마을을 마자촌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중국의 메카로 중국 회교도들의 성지 순례가 이어진다. 이교도들은 출입 불가라고 된 곳으로 무슬림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들어가고 있었다.


이슬람성지_수정.jfif 중국인 회교도들이 일생에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마자촌 내의 이슬람 성지 ⓒ위트립


성지순례사람들.jfif 이슬람 성지를 오르는 무슬림들 ⓒ위트립


마자촌에는 폐허가 된 옛 촌락과 사람이 현재 살고 있는 집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길에서 이 지역 명물인 포도를 따서 운반하는 현지인들도 만났다. 영국의 스테인, 프랑스의 펠리오와 함께 둔황문화재의 3대 도보자(盜寶者) 중 한 명인 독일인 르코크가 석굴 벽화 약탈 작업을 하며 머물렀던 집도 있었다. 불교 성지가 이슬람화되어 이슬람인에 의해 불상의 눈이 파여지는 등 훼손되고 문화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다시 약탈당하는 역사를 겪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더 이상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포도_현지인_수정.jfif
포도건조장_수정.jfif
포도를 나르는 현지인들과 포도 건조장 ⓒ위트립


로크크집_수정.jfif 독일의 탐험가이자 중앙아시아 문화 수탈자인 로크크가 머물렀던 집 ⓒ위트립


토욕구와 마자촌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소공탑에 들렀다. 소공탑은 이슬람 사원의 탑으로 처음 보면 높이에 압도되고 두 번째 보면 기하학적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이 지역이 새로 얻은 강토 신장(新疆신강)이란 이름으로 청나라 땅으로 복속된 이후 청나라로부터 이 지역의 왕위 세습권을 인정받아 왕이 된 슐레이만(1777년)이 청나라에 대한 보답으로 지은 탑이라고 한다.


탑_가로_수정.jfif 간결미와 단순미의 극치, 소공탑 ⓒ위트립


소공탑사원_사람_수정.jfif 수학의 도형이 아름다운 문양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공탑과 사원 ⓒ위트립


나는 난생처음 이슬람 양식의 탑을 보았다. 황토 벽돌을 이용해 탑 외벽에 장식한 마름모, 격자, 물결무늬는 선과 면의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단청이 고운 우리나라 사찰과 원색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티베트 절과 달리, 황토색 단색의 사원과 소공탑은 간결미의 극치를 보여줬다. 사원 안은 마치 빛을 조각하듯 빛을 솜씨있게 재단해놓아 단순하게 분리된 내부 공간 속에 서 있기만해도 빛이 만들어내는 신성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_빛_수정.jfif 서 있는 사람을 압도하는 사원 내부 ⓒ위트립


내부_빛2_수정.jfif 공간의 분리와 빛의 분절만으로 엄숙함을 표현한 사원 내부 ⓒ위트립


투루판은 한여름이면 고온으로 온 도시가 펄펄 끓는 용광로 도시다. 동시에 수천 년간 흉노, 돌궐, 위구르의 유목민족과 한족이 서로 뒤얽혀 만든 문명의 용광로 도시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가 투루판 땅에서 힘겨루기 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이질적인 종교와 문화가 한군데서 녹아난 용광로 투루판의 모습을, 불교와 이슬람교의 공존 현장인 토욕구, 청과 위구르의 힘의 관계를 보여주는 소공탑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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