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입성 둘째 날이다. 어제 대구 사람 둘이 부산으로 한 달 지내러 짐 싸들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어쩌다 한 번씩 부산에 올 때마다 느꼈던 '부산스러운 부산' 속에 우리 두 사람도 '부산함'을 보태게 되었다.
집 구하러 또 이사하러 대구에서 부산 대연동의 우리 한달살이 집까지 올 때마다 네비가 가르쳐준 대로 단번에 순탄히 온 적이 없다. 대구 도심 운전에선 상상할 수 없는 '갑툭튀' 도시 고속화 도로와 도심 터널, 겹겹 고가 도로에 주눅 들어 진땀 빼다 보면 빠질 곳을 놓치고 어느새 부산 항만까지 와 버린 우리 차를 발견하게 된다. 부부 싸움을 부르는 부산 도로가 밉다.
단언컨대,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운전하기 난해한 도시다. 행여나 조수석 발 잔소리 폭탄이 떨어질까부산에만 진입하면 운전자 남편의 어깨는 긴장 덩어리가된다. 초 긴장 모드로 운전해도 결과는 매한가지. 오늘도 북구 화명동 지인의 집에서 남구 대연동 우리 집까지 오는 길에 네비의 안내를 놓치는 바람에 하릴없이 부산 바다 앞을 찍고 되돌려와야 했다. 때문에 운전석 사람과 조수석 사람의 '살벌 안 달콤한'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반평생 우리가 살던 대구는 평지에 분지 도시다. 도심에 산이 없으니 부산처럼 도시 한가운데,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주택 사이사이에, 터널이나 고가도로가 있을 리 만무하고 가로 세로가 정직하게 교차하는 직선 평지 도로가 전부다.
이런 대구 출신자에게 부산의 도로는 롤러코스터다. 지상을 달리는가 하면 순식간에 깜깜한 터널로 빨려 들어간다. 가쁜 호흡으로 터널을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는 사이 어느새 차는 층층 고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입체 도시에 입체 도로망이다.
높은 빌딩과 산비탈 고층 아파트와 낡은 주택들은 정녕 '물리적 정지 상태'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차로 달리면서 이들 건물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순식간에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 하는 바람에 정지한 건물조차도 앞뒤 상대 운동에 더해 위아래 상대 운동의 묘기를부린다.
여행자는 다니는 사람이다. 길과의 싸움, 지리와의 싸움은 필연이다. 부산 한달살기의 최대 장벽은 '길'이다. 27년 운전 경력자를 하루아침에 초보로 만들어버리고 멀쩡한 사람을 길치로 만들어버리는 부산이다. 네비게이션도 헤맨다는 부산 도로를 쌩쌩 잘도 달리는 부산 운전자가 존경스럽다.
부산 하루 이틀 놀러온 것도 아니고 명색이 '부산 한달살러'인데 정신 빼놓는 부산 도로 시스템에 계속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대구 사람 둘이 부산 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책을 세웠다.
[부산 도로에서 살아남기] 1) 차는 가급적 집에 모셔둔다. 2) 차를 갖고 갈 땐 미리 네비로 전체 루트를 사전 시뮬레이션해본 후 핸들을 잡는다. 3) 부산 지리의 속성 학습을 위해 지하철보다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4) 하루 일정 시작 전 길 예습하기, 다녀온 후 길 복습하기.
오늘 집에 오자마자 우리는 차를 집에 고이 모셔 두고 부산 여행자로서 도시 탐문 첫나들이를 나섰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양정역 부근에 가서 카메라 수리를 맡기고 은행에 들러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 발급을 알아보았다. 서면의 대형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샀고 우리 동네 도서관에 들러 보았다. 집 부근의 시장과 마트에서 장도 봤다. 부산 한달살기 기본 세팅에 하루를 쓴 셈이다.
대구가 평면 도시라면 부산은 입체 도시다. 대구가 정적이라면 부산은 동적이다. 대구가 잔잔한 호수라면 부산은 파도 출렁이는 바다다. 한달살기 첫 도시 부산에 대한 첫인상이다. 앞으로 부산은 어떤 모습을 또 보여줄까? 내일부터 진짜 부산 탐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