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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Apr 26. 2024

세계여행 후 받은 첫 질문,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2. 경이로운 자연, 신비로운 유적, 이색적인 도시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지인들을 만났을 때 첫 질문은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였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질문은 마치 부모에게 "어느 아이가 가장 사랑스럽나요?"라고 묻는 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첫째 아이는 이래서 좋고, 둘째 아이는 저래서 예쁘고...'라고 대답하 거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어떤 곳은 자연 풍광이 멋졌고, 어떤 곳은 고대 유적이 신비로웠다. 또 어떤 곳은 도시가 이색적이었다 그래서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부문별로 뽑아봤다. 나도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이라 순위가 빠지면 서운하다.


먼저 수상 후보를 지도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약 300일 동안 내가 누빈 곳들이다.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 - 경이로운 자연

[경이로운 자연 부문]

1위) 미국 서부(5대 캐년, 새도나, 데스벨리, 요세미티, 옐로스톤, 솔트레이크 소금평원, 아치스, 캐년랜즈, 모뉴멘트벨리 등)
 - 특별히 좋았던 3곳 : 옐로스톤, 솔트레이크 소금 평원, 로스엔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 가는 길
2위) 볼리바아 우유니 사막, 우유니 사막에서 아타카마 사막까지 2박3일 육로
3위)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미국은 축복받은 땅이다. 미국 서부만 자동차를 빌려 한 달을 돌아다녔는데 약 오를 만큼 미국 땅이 부러웠다. 그랜드캐년(Grand Canyon)은 진짜 '그랜드 그랜드'했고 처음 본 순간 '와우!'라는 외마디 외엔 말을 찾지 못하는 '말잇못' 풍경이었다.


누군가가 그랜드캐년을 '10분 풍경'이라고 했다. 처음 보는 10분간 감동적이고 그다음은 감각이 죽어 감탄도 안 나온다는 뜻이다. 5대캐년(그랜드캐년, 엔터롭(Antelope)캐년, 홀스슈밴드(Horseshoe Bend), 브라이스(Brice)캐년, 자이언(Zion)캐년)은 로스엔젤레스를 기점으로 여행했다. 5대캐년에 갈 계획이라면 새도나(Sedona)와 데스벨리(Death Valley)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는 서부 여행지도 5대캐년에 뒤지지 않는다. 요세미티국립공원, 솔트레이크 소금평원, 옐로스톤국립공원, 아치스국립공원, 모뉴멘트벨리... 이 모든 지역을 통틀어 딱 한 곳만 추천하라면, 나의 원픽은 옐로스톤이다. 그러나 솔트레이크 소금평원과 LA에서 샌프란시스코 가는 드라이브길도 잊지 못다.


옐로스톤(왼) & LA에서 샌프란시스코 가는 길(오) - 미국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표로 1위를 얻었다는 우유니 소금사막은 말이 필요 없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소금 벌판이 눈 내린 들판을 떠올리게 했다. 반영사진이 환상적인 우기 때의 소금사막이 부럽지 않았다. 우유니도 좋았지만 우유니에서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으로 내려오는 육로 2박 3일간 이어진 황량한 사막은 원초적 아름다움의 연속이었다.


우유니 소금 사막(왼) & 라구나 콜로라다(오) - 볼리비아


파타고니아는 바람과 얼음의 땅이다. 칠레의 파타고니아 국립공원에서 4박 5일로 트레킹 했고 아르헨티나쪽 모레노빙하와 피츠로이를 걸었다. 파타고니아 여행에만 15일이 걸렸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두 발로 직접 걸은 곳이라 몸으로 기억되는 여행지다.


파타고니아의 하이라이트, 토레스 델 파이네 - 칠레


순위에는 못 들었지만 썩혀두기 아까워 만든 '주최자 맘대로 상' 3가지

% 신비상 : 멕시코 세노테
% 감동상 : 과테말라의 화산 3형제. 푸에고화산, 아구아화산, 파카야화산
% 포토제닉상 : 페루 쿠스코의 비니쿤카


세노테는 신성한 우물이란 이름이 딱 어울린다.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는 세노테(Cenote)라는 독특한 석회지형이 수천 개가 있다. 석회암이 녹아 침몰해 생긴 수직 동굴에 천연샘이 드러나면서 생긴 지형으로 현재는 천연수영장으로 이용된다. 오묘한 빛의 물에 드러누우면 시간이 만든 석주와 석순이 보이고 그 사이로 드리워진 열대 식물의 신비로움에 취해 물아일체(物我一體)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바야돌리드에서 다녀온 익킬(Ikkil) 세노테 - 멕시코


과테말라는 화산 여행이었다. 안티구아에서 용암과 연기를 분출하는 푸에고 화산을 보러 아카테낭고 화산에 올라서 화산에서 하룻밤을 잤다. 동틀 무렵의 아구아 화산도 장관이었고 검은 화산 쇄설물 속으로 발이 푹푹 빠지며 올랐던 파카야 화산도 개성 넘쳤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푸에고 화산, 아구아 화산, 파카야 화산 - 과테말라


페루의 쿠스코에서 갔던 일명 무지개산, 비니쿤카이다. 중국 장예의 칠채산보다 규모는 작으나 산새가 높고 실루엣이 뚜렷해서 사진빨이 더 좋다. 해발 고도(5,000m)가 높아 숨이 턱턱 막힌다. 완만히 걷는 길은 4km였으나 올라가는데만 2시간이 걸렸다.


비니쿤카 - 페루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 - 신비로운 유적

[신비로운 유적 부문]
1위) 페루의 마추픽추
2위) 로마의 콜로세움, 포로로마노
3위)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욱스말, 치첸이트사

남미 관광스폿 1순위, 마추픽추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사전 예약이 필수이고, 쿠스코를 기점으로 오가는데 돈과 시간(최소 1박 2일)이 많이 들지만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교통과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도 외부인에게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깊~고 깊~은' 오지에 있어 신비감이 더한지도 모르겠다.


신비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 페루


로마는 역시 로마이더라. 유시민 씨의 비유처럼 '빛바랜 명품을 입은 노신사' 로마는 도시 전체가 여전히 품격과 아우라를 뿜어내는 곳이었고 온 도시에 유적이 무심히 널려 있었다(당연히 공짜 유적이 많다.)


원형경기장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유적 - 이탈리아 로마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멕시코에도 많았다. 유카탄의 마야유적인 욱스말과 치첸이트사 못지않게 멕시코시티 근교 테오티우아칸의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는 가기도 쉽고 관람비도 저렴한 가성비 피라미드였다.


테오티우아칸의 태양의 피라미드(왼) & 치첸이트사(오) - 멕시코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 - 이색적인 도시풍경

[이색적인 도시풍경 부문]
1위) 튀르키예 이스탄불
2위) 볼리비아의 라파즈
3위) 페루의 쿠스코


체코 프라하도 요정의 도시처럼 예뻤다. 파리는 명불허전이다. 로마는 유적지가 여행자의 발에 차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하도, 파리도, 로마도 순위에 들지 못했다. 내노라하는 이 세 도시에 마상(마음의 상처)을 내고 순위권 내에 든 세 곳은 어디일까?


강이 아닌 바다가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시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유럽과 아시아에 한 다리씩 걸친 양다리 도시를 본 적이 있는가. 이스탄불에서는 모스크의 첨탑과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 소리 사이로, 트램이 다니고 배가 지하철처럼 다닌다. 케밥은 아직 등장도 안 했다. 이스탄불의 매력은 끝이 없다.


이스탄불 카라쿄이 쪽에서 - 튀르키예


이스탄불이 수상버스인 배로 다니는 곳이라면, 공중을 나는 버스 케이블카가 대중교통인 도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 볼리비아의 라파즈(해발 3,500~4,000m)이다. 남미에서 유럽풍 말고 남미 대륙의 진짜 주인인 원주민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도시다.


현재진행형 공중도시, 라파즈 - 볼리비아


쿠스코는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이면서 동시에 현재도 활기찬 도시다. 찬란했던 잉카의 흔적이 도심과 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내가 방문한 67곳의 도시 중 '한달살기하고 싶은 도시' 딱 한 곳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쿠스코를 들겠다.


잉카인의 후손들이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쿠스코 - 페루




생물학에 '역치(閾値, threshold value)'라는 용어가 있다. 생물이 외부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말한다. 같은 크기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역치가 올라가 더 큰 자극을 주기 전에는 자극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장기 여행은 좋다. 그러나 그 부작용은 감각의 순응으로 인해 웬만해서는 감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여행을 가면 '경이로운 자연, 이색적인 도시 풍경, 신비로운 고대 유적'이라는 강렬한 자극을 나라와 도시를 옮겨가며 어제도 오늘도 받는다. 300일 가까이 여행하다 보니 뒤로 갈수록 감동이 덜해지고 감탄사가 줄어든다. 너무 복에 겨운 소리라 독자들에게 미안하다.


'감동의 역치값이 상승하는 부작용'을 경험해보고 싶으면 장기 여행을 떠나보라. 나는 역치값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한동안 해외여행을 자제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올해를 '해외여행 자제의 해'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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