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영어 콤플렉스에서 제발 좀 벗어나보자
미지(未知)는 두렵다. 낯선 것은 두렵다. 미지를 맞닥뜨리려고 하지 않고 낯선 것을 피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 점에서 해외 자유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현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과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에 필요한 건 두 가지다. '정보와 언어'. 정보와 언어를 100% 남에게 위탁하는 과정이 패키지여행이다. 반면에 자유여행자는 '어디를 어떻게 가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잘까'의 정보도 스스로 찾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언어도 직접 소통하는 사람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정보의 양이 많으면 언어는 좀 부족해도 커버가 된다." 중국 여행에서 중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면서도 10일 넘게 란저우와 칭하이 등 중국 오지를 다니는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정보를 많이 찾아온 경우였다. 그런데 이마저도 옛날이야기다. 요즘은 정보도 실시간으로 찾을 수 있고 언어도 번역기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세상이다.
여행을 가면 일반 현지인과 대화할 일은 별로 없다. 식당이나, 호텔, 현지 여행사, 가게의 주인이나 종업원과 같이 여행자와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만 소통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뭔가를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양측의 의지만 있으면 언어 장벽은 아무것도 아니다. 만국공통어 두 가지, '바디랭귀지와 아라비아 숫자'만 있으면 거래는 이루어진다.
중남미 스페인어권을 여행한 6개월간 가장 많이 쓴 스페인어는 '도스(Dos, 숫자 2)'였다. 물론 올라(안녕하세요?)와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를 제외하고 서다. 식당에 가서 몇 명이냐고 물어오면, 두 사람 도스, 입장권 살 때도, 표 2장 도스... 이런 식이다.
첫째, 기본은 내가 하고 나머지는 번역기에게
내가 말하는 외국어의 기본 수준은, 가이드투어 때 가이드가 안내하는 기본 사항, 예를 들자면 출발 시각, 집결 시각, 점심 안내 등을 알아듣는 정도를 말한다. 대답은 능력껏 하면 된다. 문장이 아니어도 좋고 때론 외마디 단어가 더 효과적이다. 흥정이나 투어 예약에 필요하다면 번역기의 보조를 받자. 에어비앤비는 앱에서 알아서 번역해 주므로 현지 호스트와의 소통에 불편이 없다.
둘째, 영어권이 아닌 곳을 여행할 때 현지어 인사말과 숫자 몇 개를 익혀 가면 유용하다.
현지어로 기초 인사말(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히 계세요.)과 숫자 몇 개를 익혀가면 좋다. 아니, 현지 여행 중에 즉석에서 외워 반복해 써먹으면 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 이상이다
언어가 여행의 두려움을 줄여주는 존재라면 언어를 잘하면 여행이 풍요로워진다. 지식 습득도, 현지 문화 이해도 빠르고 여행자나 현지인들과 쉽게 교류하고 현지 정보도 얻기 쉽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하면 현지 가이드 투어 때 매우 유용하다. 내 경우에 잘 알아듣지 못하니, 가이드투어 때는 맨 뒤꽁무니에서 딴전만 피웠다.
여행 전 여행 국가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많이 공부해 가면 좋다. 그러나 실제로 준비는 쉽지 않다. 언어 또한 그렇다. 다다익선이긴 하지만 하루아침에 느는 게 아니다 보니 따로 준비할 수도 없다. 최소한의 회화나 단어만 구사해도 세계 어디든 다니니 영어 콤플렉스를 내려놓고 편안히 다녀보자(나한테 하는 말!).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 학교에서 배운 것은, 평생을 살아가며 울겨먹는 지식 총량의 근간이다. 학교에서 '듣기'도 '말하기'도 못 배운 나 같은 50대는 정말이지 영어에 관한 한 '이생망'이다.
영어는 들인 시간과 노력과 돈 대비 성과가 가장 안 나오는 가성비 최악의 언어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 중 한국어와 가장 멀리 있는 언어이고 가장 친해지기 어려운 언어이다. 그래도 여행을 좋아한다면, 영어는 평소에도 좀 가까이 두는 게 좋겠다. 아니면 언어비서 번역앱이랑 친해두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