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점심 먹으러 가는데, 누군가 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라며 근사한 곳에 데려간 거야. 카페의 내부도 정말 멋지지만, 음식의 맛도 훌륭했지.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였어.
그가 생각나지 뭐야. (미안하지만 신랑 생각은 전혀 안 났고…)
인테리어나 메뉴의 구성 모두 딱 그의 취향이었거든.
같이 와서 먹으면 그가 정말 좋아할 것 같았어.
평일 점심에는 시간이 안 되니까, 돌아오는 주말을 기다렸지. 주말이 되자 느지막이 일어난 그에게 말했어.
카페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음식이 정말 맛있더라", "카페 분위기도 정말 예쁘더라" 호들갑을 떨며 그에게 오늘 거기 가서 맛있는 거 먹자고 했어. 그는 귀찮은 표정으로 "멀리까지 가는 거 귀찮아. 그냥 대충 먹을래"라는 거야.
순간 김이 샜어. 오랜만에 예쁜 곳으로 나들이를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분전환할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그의 한 마디에 기운이 쭉 빠졌지. 멋진 카페의 뷰를 보면 그가 좋아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사진을 봐도 영 시큰둥한 표정의 그를 보며 괜히 심통이 나기도 하고 말이야.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가지 음식의 사진과 리뷰를 그에게 보여주었어.
"이거 봐봐. 이런 음식도 있어. 너무 맛있어 보이지 않아? 뷰도 이렇게 이쁘대"
몇 번 더 이야기하자, 그는 벌컥 화를 냈어. "아, 싫다고!! 싫다는데 왜 자꾸 이야기해"
이렇게 집에 있다가는 더 화가 날 것 같아, 집을 나와 혼자서 이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하며 마음을 달랬지.
그런데 웃긴 건, 그 때문에 화가 나서 밖에서 커피를 마시는 와중에도
'혹시 그가 나를 찾지는 않을까' 기대가 섞인 걱정이 슬그머니 드는 거야.
'식사할 때가 되어서 그가 배고플 텐데... 혼자 밥 챙겨 먹는 거 잘 못 하잖아. 그럼 언제라도 가서 같이 밥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궁상맞게 혼자 앉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온갖 고민을 했더랬지.
그러다가 깨달았어.
예전에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후배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어.
"저는 주말에 산책도 하고 데이터도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신랑은 주말마다 나가서 친구들이랑 하루종일 농구하고 와요"
"신랑은 그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인가 보지. 나도 혼자 시간을 보내야 재충전되는 스타일이라, 누군가랑 하루종일 붙어있으면 좀 피곤할 것도 같아. 신랑이랑 '주말 한 끼 같이 외식' 아니면 '저녁에 한 시간 같이 산책' 이렇게 타협점을 찾고, 그 외는 내버려 둬. 신랑 혼자 시간 보내라고 하고, 그 시간 동안 너도 너대로 혼자 재밌게 보내"
"그런데... 신랑이 가끔 농구 안 가고 나랑 놀고 싶어 할 때가 있을까 봐... 그럴 때 나 찾으면 내가 있어줘야 하니까 자꾸 집에 있게 돼요. 따로 내 약속 잡기 나가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그건 신랑이 감당할 몫이고, 그게 싫으면 신랑이 다음에는 먼저 이야기를 하거나 시간 조정을 하겠지. 상대방이 언제 나 보고 싶어 할지 모르니까, 넌 아무것도 안 하고 신랑만 바라보면 서로 피곤하지 않을까?"
신랑땜에 고민하는 후배에게는 이렇게 잘도 쿨하게 이야기해놓고, 나는 주말 내내 짝사랑하는 내 아들 주위를 뱅뱅 돌고 있었던 거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나도 알고 있어. 내가 후배에게 이야기해 준 것처럼 '나는 제안을 하되, 그가 거절하면 나 혼자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서로 감정상 하지 않고, 둘 다 행복해지는 방법이지.
그런데 내가 짝사랑에 빠져보니, 후배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뒤늦게서야 조금 이해가 되었어.
"셋이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는데, 아들이 비행기 좌석을 일부러 우리랑 떨어진 자리로 끊었어. 그런데 내 와이프가 비행기 중간에 계속 아들 자리에 가서 잘 먹고 있는지, 뭐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거야. 아들이 신경 쓰여서 미쳐버리려고 하더라고. 아니, 엄마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거야?"
20살 아들과 얼마 전 가족여행을 다녀온 선배가 내게 이렇게 물어보더라.
똑같은 입장에서 그 마음이 너무 공감이 되어 항변했지.
결혼하고 나서야 진정한 짝사랑이 시작되었어.
그리고 내 아이를 향한 짝사랑은 조절하거나 제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실히 깨달았지.
엄마가 항상 옆에 있어주는 건 애착형성기에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였어.
사춘기 아이가 엄마를 멀리 하고싶어하는 걸 머리로는 알고있지만, 마음으로는 잘 되지 않더라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라 쓰고 '미친 것 같은'이라 읽는다.) 아들을 키우는 나의 여동생들이 나처럼 속상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마디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