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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는 말이 없어서 좋다

시간에 스민 계절 | EP.02

by 마리엘 로즈


가을비는
감정을 덮지도, 흘리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틈이 되어준다.



혼자 있는 감각을 허락하는 시간

가을비가 내리는 밤은
왠지 마음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촉촉한 공기 속에선
말도 감정도
조용히 느슨해진다.

무언가를 굳이 채우지 않아도 괜찮고
어딘가로 향하지 않아도 충분한 밤.


그저 지금 이대로
비와 함께 머무는 것으로도
충분해진다.



가을의 비는
무언가를 쓸어가진 않는다.

오히려 오래 머물던 감정을
살며시 내려앉게 만든다.

정리도 해소도 아닌
그저 ‘조용히 두는 것’.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스스로 정돈되는 밤이 있다면,
그건 아마 이런 밤일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 더 조용해지고
조금 더 깊어지는 기분.

슬프지는 않지만
어딘가 느슨하게 가라앉는 마음.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
비 오는 밤이라는 틈 안에서
천천히 숨을 쉰다.



나는 그런 밤이 좋다.

무언가를 극복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밤.

그저 나를
잠시 내려두는 시간.

비가 내리는 동안만큼은
감정이 어긋나도 괜찮고,
생각이 흐트러져도 괜찮은,


묵직하게 쉬어가는 계절의 틈.



가을비는
나를 안으로 깊숙이 데려간다.

겉을 채우지 않아도
속이 더 넓어지는 느낌.


그저

듣고,

멈추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지는 밤.



가을비 내리는 밤,
나는 조용히 풀린다.

세상과 나 사이의 결이
잠시 느슨해지고,
그 틈으로 들어온 마음이
비처럼,

조용히...
내 안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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