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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의 빛은 왜 그렇게 따뜻할까

시간에 스민 계절 | EP.01

by 마리엘 로즈


늦은 오후의 빛은,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는 작은 휘장이다.

말 없이도,
괜찮다고 전해오는 온도의 언어.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위로


하루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빛이 먼저 알려준다.

늦은 오후의 빛은 늘 부드럽다.


정확히는,

부드럽고도 단정하다.


더도 덜도 아닌 채도로,
무언가를 감추지도

지나치게 드러내지도 않는 온도로,


마음속 먼지를 조용히 털어주는 듯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혹시,
늦은 오후의 빛엔
‘다 괜찮다’는 말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별일 아닌 일에 괜히 마음이 무너졌던 날도,
그저 걷기만 했던 날도,


그 빛 아래에 서면
잠시 괜찮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건 착각이 아니라,
몸보다 먼저
마음이 안도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지친 하루의 뒷모습을 닮은 시간.


햇살이 건물 벽을 타고 내려와
내 그림자 곁에 조용히 웅크린다.

그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란 느낌이 든다.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무는 온기,
이따금 사람보다 더 따뜻한 위로.



누군가의 말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시간에 있느냐’가
마음을 달래주는 때가 있다.

늦은 오후가 딱 그렇다.

달려갈 필요도 없고,
스스로를 꾸밀 필요도 없는 시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드문 순간.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 골목을 따라
나는 천천히 나를 따라잡는다.

늘 어딘가에 도착하려 애쓰던 하루를
그 시간만큼은 놓아주고 싶어진다.

그저,

이 빛 아래에서
오늘의 나를
잠시 안아주고 싶어진다.



그래서일까.


나는 하루 중
늦은 오후의 빛이
가장 따뜻하다고 믿는다.

그건 단지 햇살이 아니라...


무사히 오늘을 건너온 마음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작은 휘장 같은 것이니까.



그 시간의 빛은 말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이제 좀 쉬어도 돼.”

그래서 나는,
그 빛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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