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스민 계절 | EP.04
어느 날 아침,
문을 열고 한 걸음 나섰을 뿐인데
공기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늘 걷던 골목인데,
오늘은 공기의 결이 묘하게 다르다.
투명하고 얇은데,
살짝 서늘하고, 조용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
가을이 왔구나.
ㅡ
계절은
달력으로 오는 게 아니라
공기의 촉감으로 온다.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각,
기억보다 먼저 반응하는 느낌.
피부에 닿는 온도가
조금 낯설게 느껴질 때,
그건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작은 신호다.
ㅡ
사람의 마음도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바뀌는 것 같다.
큰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작은 숨결이 달라지면서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문득,
예전과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내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ㅡ
가을이 오면
아침이 가장 먼저 달라진다.
햇살은 부드러워지고,
그늘은 더 길고 깊어지고,
공기에는 이유 없는 침묵이 스민다.
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기분.
그건 분명 낯선 아침인데,
이상하게 익숙해지고 싶은 공기.
그게 바로
가을의 시작이다.
ㅡ
나는 그런 아침이 좋다.
감정이 먼저 앞서지 않아도 되고,
생각이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감각이 조용히 깨어나는 순간.
마음보다 먼저
공기가 나를 알아보는 아침.
ㅡ
아침 공기가 낯설게 느껴질 때는
가을이 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낯섦이 싫지 않을 때는
내 마음도
조금 달라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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