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홀리게 만드는 것들

나를 이해하는 작은 기록 | EP.06

by 마리엘 로즈


나는 쉽게 빠져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순간들은 예외다.


빛, 향, 음악, 문장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의 결을 건드릴 때,
나는 무력해진다.




늦은 오후의 빛은 늘 나를 붙잡는다.


창가를 기울며 들어오는 서향은

단순한 황혼빛이 아니다.


마치 낡은 악보 위에 마지막 음을 얹는 듯,

은은하면서도 단단하다.


그 빛 속에 서 있으면,

하루가 저물어가는 아쉬움보다
남아 있는 시간을 붙잡으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언어도 그렇다.


책 한 귀퉁이에서 만난 문장이

며칠 동안 나를 따라다니는 날이 있다.


언뜻 스쳐 읽은 말인데도

내 안에서는 계속 번지고 울려 퍼져
결국 나를 흔든다.


글은 지나가지만, 그 잔향은 오래 남는다.



감각의 파편은 더 날것이다.


막 갈라놓은 나무결에서 풍기는 은근한 냄새,
비 오는 날 피부에 스며드는 서늘한 공기,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


이 순간들은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고 흘러가지만,
그 덧없음이 오히려 내 안에서 오래 빛난다.



그리고 음악.


스스로를 긴장 속에 내모는 나.

서슬 퍼런 신경을 풀어준 것도,
끝내 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해준 것도 음악이었다.


몰입 뒤 찾아오는 공허를 견디게 한 것도

결국 음악이었다.


남겨진 멜로디의 떨림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 있었다.




나를 홀리게 만드는 것들은 거창하지 않다.


빛의 결 하나,
향기의 조각 하나,
문장 몇 줄,
그리고 흘러가는 노래.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이 내 안에서 파문을 만들고,
나는 그 파문에 흔들리며 다시 글을 쓴다.

홀림은 결국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는 오늘도 홀리고 싶다.
그것이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니까.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그 모든 빛과 향,

문장과 음악을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내 안에서 느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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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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