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인간을 이해하다 - 감정의 결 | EP.05
인간을 사랑해버린 영혼의 기록
구미호의 시선
나는 인간이 슬픔을 다루는 방식을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슬픔은 그저 흘려보내면 되는 것,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슬픔을 결코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들은 슬픔을 붙잡았고
기억하려 했고
때로는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림으로 남기고
노래로 부르고
글로 적어두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고통의 반복이라 여겼다.
왜 굳이 상실을 다시 꺼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들을 지켜보며
천천히 알게 되었다.
예술은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특별한 하루,
사라진 누군가,
마음의 깊은 자리에 남은 순간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서
그들은 예술을 만들었다.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가 아니라
슬픔을 ‘기억하기 위해’ 예술이 생겨난 것이다.
ㅡ
나는 그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영원을 가진 나에게
기억은 늘 넘쳐났고,
그래서 단 한 번도
‘기억하고 싶은 하루’를 붙잡아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잊히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기억을 소중히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달랐다.
그들의 시간은 짧고,
사라지는 것이 많았으며,
사라진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만든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ㅡ
나는 처음으로
영원을 가진 나의 결핍을 보았다.
영원은 편리했지만
그 편리함은 감정을 둔하게 만들었다.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은
결코 소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사라질까 봐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이
예술이라는 빛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들의 예술을 보며
조용히 감탄했다.
슬픔을 지워버리지 않고,
오히려 빛나는 모양으로 바꾸어
세상에 남겨두는 그들의 방식.
슬픔을 잊어버리는 대신
더 아름답게 기억하려는 기술.
그 기술은
영원을 살아온 나에게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마음의 용기였다.
그리고 그날,
나는 인간의 슬픔이
왜 그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슬픔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형태를 바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