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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강 꺼진 불씨는 다시 타오른다

by 김용석

의욕이 꺾이는 순간, 나만 그런 걸까?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새 교재를 사서 첫 장을 펼치며 다짐한다.
“이번엔 정말 끝까지 해보자!”

하지만 어느 날, 그 마음이 툭 꺾인다. 예고도 없는 단어 시험에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던 순간. 수업 속도가 너무 빨라 필기를 포기해야 했던 날. 옆자리 친구가 유창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작아지는 내 모습.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이야기다. 그럴 때 우리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역시 난 영어랑 안 맞아.”
“나만 이렇게 뒤처지는 건가?”

그러나 놀랍게도, 이건 결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오히려 열심히 시작한 사람일수록 더 크게 흔들린다.


문제는 영어가 아니라 ‘감정’

영어 공부를 포기하게 만드는 건 시험이나 빠른 수업이 아니다. 사실은, 그 사건을 바라보며 내가 내린 자기 평가가 마음을 짓누른다.

“난 소질이 없어.”
“이건 내 수준에 안 맞아.”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보다, 그 뒤에 붙은 ‘나는 안 된다’는 해석이 무력감을 불러온다. 결국 영어가 싫어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마음을 푸는 열쇠: 명료화

다행히 꺼진 불씨는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왜 꺼졌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과정을 ‘명료화’라고 부른다. 명료화는 얽힌 마음을 풀어내는 훈련이다.

사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생각: 그 일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감정: 그 해석이 어떤 마음을 불러왔는가?


예를 들어, “수업 속도가 너무 빨라 이해를 못 했다”는 사건이 있다면, 거기에 “난 영어를 못 따라간다”라는 생각이 붙는다. 그 결과, 감정은 막막함과 한심함이 된다. 명료화하기 전에는 그저 하루가 힘들고 지칠 뿐이다. 왜 무기력한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사건·생각·감정을 나눠서 보면, 실제 문제는 ‘내 실력 부족’이 아니라 단지 ‘속도가 빨라서 이해를 못 했다’는 상황임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해결책은 분명해진다. 예습이나 보충 자료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아는가? 명료화는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무기력의 뿌리를 찾아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삶의 무기다.


작은 불씨를 다시 살리는 법

꺼져가는 마음을 다시 살리는 건 거대한 결심이 아니다. 명료화를 통해 사건·생각·감정을 구분하는 능력이 그 시작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 번에 완성되는 기술이 아니다. 아궁이 속 꺼진 불씨를 되살리려면 끈질긴 집념이 필요하듯, 명료화도 꾸준한 훈련과 의지가 필요하다.

명료화가 이뤄지면 사건과 감정, 생각이 분리되고, 그 위에서 구체적인 대안이 보인다. 그리고 그 대안을 실행하는 작은 계획 하나가 성공의 열쇠가 된다.

예를 들어,

하루에 단어 5개만 외우기

친구에게 모르는 부분 묻기

이해 안 된 부분 짧게 복습하기


이런 작은 성공 경험이 불씨에 바람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그 불씨는 점점 타올라, 결국 꺼지지 않는 불길이 된다.


영어 공부를 포기하게 만드는 건 영어가 아니다. 다루지 못한 감정이 우리를 지치게 할 뿐이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풀어낼 때, 꺼진 불씨는 다시 타오른다.

그러니 기억하자.
당신은 영어가 힘든 게 아니라,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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