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지켜보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학생은 마치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는데, 어떤 학생은 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쉽게 나아가지 못한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까? 필자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완벽주의 성향에 주목하게 되었다.
완벽주의가 타고난 기질인지, 아니면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성향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고 작은 형태로 완벽주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완벽주의라는 성향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캐나다 심리학자 Hewitt와 Flett는 이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는 자기지향 완벽주의다. 이는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세우고 반드시 그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태도다. 시험에서 A+가 아니면 실패라고 여기며 밤새 책을 붙잡거나, 보고서의 작은 오타 하나에 자책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그렇다. 성취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자기비판이 자신을 무너뜨리는 칼날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타인지향 완벽주의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예컨대, 팀장이 “이 정도 결과물은 부족하다, 더 완벽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지적하거나, 친구가 단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강하게 비난하는 경우다. 이때 완벽을 향한 기대는 곧 갈등과 실망으로 바뀌며, 관계의 균열을 낳는다.
세 번째는 사회부과 완벽주의다. 이는 부모, 선생님, 상사와 같은 중요한 사람이 자신에게 높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믿는 태도다. “부모님이 나에게 1등을 바라니까 실수하면 안 돼”라며 불안해하는 학생, “상사가 나를 인정하려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입사원이 그 예다. 실제로 주변에서 그렇게까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압박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세 가지 유형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자기지향: “나는 완벽해야 한다.”
2) 타인지향: “너는 완벽해야 한다.”
3) 사회부과: “사람들이 나에게 완벽을 기대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 가지 목소리를 모두 조금씩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완벽주의는 분명 성취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신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관계를 힘겹게 만들며, 불안 속에 우리를 가둔다. 그렇기에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길에서 잠시 멈추어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의 나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세상은 더 넓어지고 사람들은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완벽이 아니라 ‘충분히 괜찮음’을 인정하는 순간, 삶은 훨씬 가볍고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알게 된다. 행복은 완벽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실수를 보듬으며 함께 웃을 때 비로소 자라난다는 것을.
그래서 진정한 심리적 안전이 보장된 교실은 완벽함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나 허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완벽보다 더 소중한 삶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