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장에서 목표 설정 방식과 완벽주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그 심리들이 학습 과정 속에서 어떻게 불안과 연결되는지 더 깊이 들여다보자.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때, 불안은 종종 조용히 자라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듯 우리를 덮치는 경우가 있다. 그 불안을 크게 키우는 두 가지 심리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숙달회피 ―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다른 하나는 사회부과 완벽주의 ― “주변의 기대를 반드시 맞춰야 한다”는 압박이다. 이 두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면 불안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고, 우리는 마치 심판대 위에 선 선수처럼 작은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불안을 줄이는 길도 있다. 그것은 숙달접근, 즉 배움 그 자체를 즐기는 태도다. 목표가 ‘실수 없는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일 때, 우리는 실수 속에서도 배움을 발견한다. 같은 영어 발표라도 “틀리면 큰일”이라는 생각 대신 “좋은 연습이 되겠구나”라고 받아들일 때, 긴장은 줄고 호기심이 자리를 채운다. 그 순간, 심장은 두려움의 북소리가 아니라 탐험의 설렘으로 뛴다.
교실 속 풍경을 보자. 민수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틀리면 어때? 오늘 새 표현 하나만 건지면 이득이지.”
그에게 실수는 부끄러운 사건이 아니라 도약의 재료다. 반면 지영은 책장을 넘기며 중얼거린다.
“틀리면 창피해… 차라리 말하지 말아야겠다.”
아직 오지도 않은 실패가 이미 그녀의 입을 막아버린다. 같은 교실, 같은 교재지만 태도에 따라 배움의 무대는 전혀 다른 색을 띤다. 한쪽은 모험의 장이 되고, 다른 쪽은 심문이 되는 것이다.
외국어 학습에서 실수는 흔히 부끄러운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연습 기록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조차 무대에서 건반을 틀린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가 연주의 일부가 되듯, 학습에서도 실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완벽한 결과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오늘의 기록이 쌓일 때, 불안은 줄고 용기는 커진다.
또한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비교는 불안을 키우지만, “어제보다 한 문장 더 말하기” 같은 자기 기준은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새 단어 하나 쓰기’, ‘5분간 영어로 생각하기’ 같은 작은 목표를 더하면, 자신감은 서서히 쌓여간다. 완벽주의 역시 잘 활용하면 강력한 엔진이 되지만, “틀리면 안 돼”라는 족쇄로 쓰이면 우리를 묶어버린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완벽한 문장은 없다. 완벽하게 배우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쌓는 것은 흠 없는 결과물이 아니라, 조금씩 더 나아지는 발자국이다. 그 발자국이 모일수록, 언젠가 우리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멀리 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심판대 위의 선수가 아닌, 탐험에 나선 여행자로서 배움에 임할 때, 학습은 더 이상 불안의 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기쁨의 여정이자 설렘의 모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