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스타
아침부터 밖이 소란스럽다. 한 여행자가 숙소를 떠나는 것이다. 익숙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것. 요 며칠간 숙소에 머물면서 나도 그것들에 꽤 무뎌졌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그렇게 서로 멀어졌지만, 그것은 기약일 뿐 약속은 아니었다. 그런 모습이 한편으로 자연스럽다. 마음에 구석진 부분이라도 인연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야 또 다른 인연을 받아들일 수 있다. 나로서는 그렇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면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한바탕 소란이 휩쓸고 간 다음 방문을 열고 나갔다. 숙소는 어제보다 고요하다. 커피를 내리고 식탁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런던에도 슬슬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부엌 창문에 자주 놀러 오던 고양이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 내내 습기를 먹고 있던 낙엽들은 부서져 날아가거나 형체를 잃고 땅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 조금씩 싹을 피우는 어린잎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올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이제 이곳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익숙한 곳을 뒤로하고 다시 새로운 곳에 부딪혀야 하는 시간이다.
건조된 빨래를 꺼내 방으로 돌아왔다. 75L 가방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 불안한 마음을 말해주듯 무게를 더하는 잡동사니들이 담겨 있었다. 무거운 생각들을 버리려 왔지만 가방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다른 가방에는 노트북, 패드, 카메라와 렌즈등 순간을 기록하겠다고 가져온 전자 장비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그런 순간을 담을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 순간은 눈에 담거나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과 더 잘 맞았다. 한국에서 여행 가방을 준비할 때 다른 사람들이 적어놓은 준비물 리스트대로 체크하며 짐을 챙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나에겐 필요 없는 물건 투성이었다. 그때는 나와 내 여행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런던을 떠나는 날 아침, 옷을 챙겨 입었다. 숙소를 찾아오던 날 보다 옷이 가벼워졌다. 날씨가 생각보다 금방 포근해져 버렸다. 짐을 챙기는 나를 반대편 침대에 앉은 승현이가 바라보고 있었다. 외로운 타지 생활에 마음 줄곳이 없었던 승현이는 내가 가는 게 못내 아쉬운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승현이도 이 시간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당분간은 손님이 없을 거라 했다. 승현이는 손님이 없으면 일이 줄어들어 운동이나 사업에 시간을 쓸 수 있어 좋다고 씩씩한 척 말했다. 그 씩씩함이 내가 떠나는데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다. 짐을 챙겨 문 앞에 섰다. 가방의 어깨끈과 허리끈을 졸라 매었다.
그리고 승현이에게 악수를 청했다. 운동을 오래 해 돌 같은 승현이의 손은 생각보다 따듯했다. 승현이는 불안했던 첫 여행지의 기억을 따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승현이와는 기약이 아닌 약속을 했다.
숙소를 떠나 킹크로스역으로 향했다. 바이올렛색의 대문이 있는 이 골목을 선명하게 기억하려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았다. 첫날 여행자들과 맥주를 마시기 위해 들렀던 편의점, 한국인인걸 알고 토트넘 중계를 틀어줘 늦게까지 시간을 보낸 펍, 노팅힐을 여행하던 날 지갑을 가져가지 않아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지갑을 들고나가 바로 향했던 피자가게,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은 승현이와 찾았던 태국 음식점등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공간을 뒤로하는 마음이 헛헛했다.
역 근처에 도착하니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런던 아이 앞에서 버스킹을 하던 그 남자였다. 런던은 나에게 끝까지 익숙한 것들로 런던에서의 마지막을 배웅해주고 있었다.
다음 여행지인 프랑스로 가기 위해 유로스타를 타야 했다. 국가 간의 이동을 기차로 하다니. 분단국가에서 살고있는 나로서는 신기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국가 간의 이동이라 출입국 심사를 거쳐야 했다. 출입국 심사는 언제나 긴장된다. 내가 모르는 나의 범죄 이력을 이들이 알고있지는 않을까, 부정적인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진 않을까 말이다. 그리고 출입국 심사원의 인상은 항상 위압적이다. 내 기분이 그를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는 앞뒤로 가방을 두 개 메고 있는 내게 여행을 왔냐고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기차 모양이 그려진 도장을찍어주곤 물품 검색대 쪽을 가리켰다. 내 여행을 책임질 가방들도 무사히 나와 함께 반대편에 도착했다.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앉을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자리엔 모두 사람들이나 짐이 차지하고 있었다. 짐을 올려놓은 사람에게 양해를 구할 용기가 없어서 다른 젊은 여행자들처럼 기둥 앞에 가방을 두고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 파리 북노드역에 도착할 예정이다. 저녁 10시로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소매치기가 많다는 북노드역에서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북노드역에서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까지 교통편을 검색해 보았지만 무거운 짐을 메고 여기저기 헤매며 소매치기를 상대할 자신이 없어 숙소가 있는 파리의 마레 3 지구까지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30킬로가 넘는 짐을 메고, 걸어서 5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다. 어떤 것이 더 무모 한 생각인지 지금 생각해 보니 어지러울 따름이다.
기차가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동시에 탑승 대기줄로 모였다. 대기줄은 출입국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할 만큼 심사장 밖을 뚫고 나갈 기세였다. 나도 그들과 섞여 서 있었는데 큰 배낭을 멘 여행자는 주변에 나 밖에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와 대합실을 빠져나왔다. 기차 번호와 열차번호를 확인하고 올라탔다. 중간 통로마다 짐을 거치해 놓는 공간이 있었다. 자전거를 묶는 자물쇠도 챙겨 왔지만 가방을 들고 기차 안에서 어디로 도망가겠냐 싶어 사용하진 않았다. 가방이 잘 보이는 자리를 예약해 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만큼 한국에서 탔던 기차의 내부 분위기보다는 삭막했다. 글쎄, 삭막하다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몇 없었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 급하게 한 여성이 올라탔다.내 앞에 서서 들어가도 되냐는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자리를 비켜주니 고맙다는 말과 함께 여성은 창가 쪽에 앉았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 여성과 나는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구체적인 대화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워낙 짧은 나의 영어 탓에 여성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 못 할 거라 생각한다.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가끔은 핸드폰으로 찾아 뭔가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살면서가장 정신없는 경험이라 하겠다. 대화를 포기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이 열차가 출발하자 헤드셋을 꺼냈다. 지금부터는 개인 시간을 존중하자라는 뜻인 줄 알아채고 나도 이어폰을 꺼냈다. 15분 정도의 대화는 그 여성이 영국사람이라는 것 이외에 아무 정보도 주지 못했다.
기차는 점점 인적이 드문 마을 쪽을 달리다 이내 캄캄한 터널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