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연의 시작
기차는 가끔 굉음을 내기도, 고요한 구간을 지나기도 하면서 어둠 속을 뚫고 있었다. 나는 가방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며 지루함을 해소하려 애썼다. 잠시 졸다가 가방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상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생각했다. 몇 번째 골목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소매치기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가방을 방어해야 할지, 녀석의 급소를 향해 오른쪽 주먹으로 날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쓸데없는 나의 상상력을 낭비하고 있을 때 모두의 적막을 깨는 사이렌이 기차에 울리기 시작했다. 기차네 직원들은 기차칸을 이동하면서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각자 혼자만의 상상을 하며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여분이 지났을 때 사이렌이 멈추고 방송이 나왔다. 대충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어느 문외한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폈을까. 여기저기 혀를 내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기차는 지루한 터널에서 빠져나와 프랑스 어딘가의 한적한 마을 쪽을 달리고 있었다. ‘이제 프랑스 구나. 기차로 국경을 넘어왔어.’
십 분 안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나는 한국인답게 제일 먼저 가방을 챙겨 문 앞에 섰다. 일단 잃어버린 물건 없이 모든 것과 함께 기차를 내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어깨끈과 허리끈을 평소보다 더 세게 조이고 비싼 장비가 든 가방의 지퍼들을 확인하며 앞으로 더 꽉 끌어안았다. 기차의 문이 열리면 어느 곳에도 한눈팔지 않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곧장 출구를 찾아 나갈 생각뿐이었다. 기차 문이 열리고 나는 처음으로 프랑스 땅을 밟았다는 의식도 없이 빠르게 출구를 찾았다. 많은 인파가 기차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지만 남들보다 머리 하나 더 있는 높이 덕분에 출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출구를 나와서 숙소 위치를 저장해놓은 구글 맵을 확인 하며 걷기 시작했다. 북노드역의 악명을 들을 새도 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파리 시내는 파리 올림픽 개최를 위한 준비로 늦은 시간까지 복잡했다. 도로 정비를 위해 통행이 제한되어 있는 곳도 더러 있어 생각했던 것보다 길을 더 돌아가야만 했다. 숙소로 가는 시간이 더 길어져 어깨와 무릎이 아팠다.
처음 본 파리의 느낌은 런던과는 확실히 달랐다. 늦은 시간까지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고 분위기는 런던보다 부드러웠다. 와인을 마시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음식도 런던에서 봤던 음식보다 훌륭했다. 프랑스에서의 여행을 기대하며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무거운 짐을 안전하게 내려놓아야 이곳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학습된 행동이다.
숙소로 선택한 곳은 마레 3 지구이다. 여행자에게 안전한 지역으로 쇼핑 스트리트도 발달해 있어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사실 며칠 동안 숙소 주변을 여행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정보다. 내게 이번 여행에 있어서 숙소를 고르는 기준은 단 하나, 값이 저렴한가? 였다. 물론 값이 저렴한 만큼 위험 부담을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가능한 한 경비를 아껴서 예상한 여행 일자보다도 더 오래 여행을 하고 싶었다.
숙소를 5분 정도 남겨놓은 거리엔 음식점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중국음식점이 많았다. 이곳에 아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 같았다. 도시는 생기가 있었고 내가 상상했던 위험한 상황이란 없을 것 같았다.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 연락을 달라는 호스트의 말에 숙소 앞 벤치에 가방을 풀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20분, 30분이 지나도 답은 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가방을 다시 메고 사이트에 있는 주소로 찾아가보려 했다. 분명히 사이트에 나와있는 번지수는 19번지인데 18 번지 건물 다음에 바로 20번지가 있는 희한한 상황이었다.
'뭐지? 해리포터에서 처럼 벽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
가방을 메고 근처만 빙빙 돌며 헤매길 30분, 19번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점점 짜증을 넘어선 불안감이 생겼다. 오늘 밤 숙소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자정이 다 돼 가는 시간에 숙소를 구하긴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희미하게 잡히던 핸드폰 안테나에서 알림이 울렸다. 호스트였다. 호스트의 연락에 분노는 사라지고 나를 어서 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호스트는 숙소의 대문사진과 함께 열쇠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사진을 확인하니 조금 허무했다. 18번지가 적힌 건물과 20번지가 적힌 건물사이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식당입구라고 착각했던 문 위에 조그맣게 19번지라고 적혀있었다. (그것도 사람이 써놓은 것처럼.)
그래도 벽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19번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건물 1층을 포함해 이 거리의 거의 모든 가게가 중국음식점이었다. 들어간 건물 현관에서부터 기름냄새가 진동을 했다.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라 해도 불이라도 나면 활활 타버릴 것 같았다. 눈앞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었는데 좁은 폭 때문에 가방을 메고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숙소는 5층에 있었다. (5층이라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2층과 3층의 일반 가정집에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는 등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안에서 인기척은 났지만, 저녁 시간엔 왠 아시아 인이 문을 열어달라고 소란을 피우는걸 안에서 지켜보며 그들이 불안에 떨었을 것 같다. 신고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5층까지 폭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것은 정말 고통이었다. 게다가 낮은 천장 때문에 허리를 숙여 올라가야 했다. 가방의 무게가 무릎과 허리에 오롯이 전달되었다.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2개의 2층 침대에 짐이 없는 곳을 골라 가방을 풀어 두었다. 방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열려 있는 창문에서는 1층 식당의 기름냄새가 올라오고 있었고, 화장실은 런던 복솔의 첫 숙소를 연상시키는 좁은 화장실. 힘든 여정을 보상받을 수 있는 안락함이 아니었다.
숙소비를 감안하면 이 모든 게 나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다른 여행자들이 오기 전에 화장실을 사용하고 잘 준비를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3박.
프랑스에서의 여행이 걱정되었다.
동규를 만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