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규와 동행
어제 하루는 파리의 날씨만큼이나 우울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다른 게스트들의 준비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방을 나서는 게스트와 인사를 하고 나도 일정을 시작하려 2층 침대에서 내려갔다. 몸이 덜 풀렸는지 마지막 한 발을 내디딜 때 엄지발가락으로 모든 하중을 받으면서 떨어졌고, 꽤나 부어버린 엄지발가락 때문에 신발을 신기가 불편해졌다. 반 강압적으로 숙소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밀린 글을 쓰거나 사진첩을 보며 그동안의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됐지만 하루가 날아가버린 것 같은 허탈함 따위가 마음속을 지배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여행은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다. 부어버린 발가락을 보고 있자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온 동규가 하루 종일 숙소에 있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맥주와 안주 거리등을 사 왔다. 그리고 내 발가락의 상태를 확인했다.
"형. 이 정도면 내일 여행에 무리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요? 내일 여행 엄청 기대하고 있는데.."
나와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편파적으로 진단을 내려버린 동규가 귀여우면서 고마웠다. 동규의 기도가 간절했는지 다음날 붓기가 많이 줄어들고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아무렴 그동안 이 무거운 몸뚱이를 버텨낸 내공이 있지. 그 정도로 무너질 발이 아니지. 동규와 나는 준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왔다.
하늘에 먹을 뿌려 놓은 듯 흐렸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진 않았다.
동규의 여행 코스에 동행하기로 했다. 동규도 여행하는 방식이나 루틴이 있었다. 여행에는 항상 러닝화를 챙겨 다닌다. 그리고 도시에 있는 공원위주로 여행을 한다. 여행기간 내에 읽을 책도 준비한다. 오늘은 어제도 다녀온 샹젤리제 거리 근처에 있는 '몽소 공원'에 가기로 했다. 어제 날씨가 흐려 오래 있지 못했지만,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오늘 나를 데려가 주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숙소 근처에 있는 역으로 향했다. 프랑스 여행에서는 처음으로 교통카드 (나비고)를 사용하게 되었다. 나비고를 충전하는 기계 앞에서 한참을 헤맸지만 동규가 차근차근 도와주었다. 나비고는 1 존에서 5 존까지 파리 내 나뉘어있는 구역을 선택해 표를 구매하거나 교통카드를 충전해야 한다. 우리는 샹젤리제 거리 여행을 위해 2 존까지 여행할 수 있는 표가 필요했다. 혼자서 하려 했다면 소매치기도 신경 쓰고 당황했을 법 하지만 동규랑 같이 부딪혀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개찰구를 지나 지하철이 들어오는 곳으로 내려갔다. 샹젤리제 거리를 가기 위해서는 오페라역에 내려야 한다. 3호선을 타고 중간에 RER열차로 환승해야 했다. 반대편 열차가 들어왔다. 열차 외벽에는 그라피티가 되어 있었다. 런던의 지하철과는 다르게 역사 안도 넓고 열차도 좀 더 쾌적해 보였다. 파리지앵들의 힙한 무드도 느껴졌다. 무엇보다 처음에 적응되지 않았던 '승객이 알아서 문 열고 내리기'가 이제는 자연스러웠다.
환승을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서 다른 역사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우리나라처럼 지하에서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어제 동규는 이곳에서 헤맸다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똑같은 곳에서 또 헤맸다. 당황하는 동규를 달래 가며 침착하게 가야 하는 방향의 RER 플랫폼을 찾았다. 침착한 마음을 가지면 길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긍정적인 평정심을 갖기가 힘들다. 가끔은 표지판을 잘 따라가도 나오지 않는 목적지에 당황하거나 업데이트되지 않은 구글의 지도 때문에 건물을 혼동하는 일도 있다. 모두 여행의 일부다.
동규와 나는 역사 내의 에스컬레이터에서 차분히 서서 내려가는 법이 없었다. 한국인의 종족특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듯 에스컬레이터도 계단처럼 걸어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는 단순히 걸음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도구 일뿐이라 여기면서.
RER 열차는 독특한 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거나 올라가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중층을 낀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열차였다. 일반적인 지하철보다는 규모가 있어 한 칸에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었다. 정차하는 역의 특성을 보니 굵직한 장소를 다니는 열차 같았다. (중심 관광지를 다니는 것 같았다) 오페라 역은 멀지 않았다. 동규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열차에서 출구를 찾아 계단을 올라왔다.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 모르겠지만 바게트의 고소하고 바삭한 향이 났다. 바게트의 나라답게 출구에서 빵냄새가 나다니. 아니면 바게트향 디퓨저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파리는 다양한 향이 존재하는 도시다.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묵직하게 나의 코로 들어오는 향들이 있다. 처음 맡아본 향수향이 난다. 가끔은 용기 내서 물어보고 싶은 향수 향도 있었다. 프랑스어는 영어보다 서툰 탓에 어디서든 말 걸기가 힘들었다. '봉쥬르와 메르시 보꾸'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손짓 발짓을 곁들여야 했다.
역시 프랑스도 표지판이 친절하지 않다. 관광객 입장에서의 생각일 수 있지만. 열차 안에서도 다음 역의 이름만을 말하는 방송이 나온다. 우리나라처럼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라거나 내릴 때 틈을 잘 보고 내리라는 안내 방송은 없다. 영국은 출구를 표시할 때 way out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프랑스는 Sortie라고 적혀있었다. 다시 새로운 것에 적응을 해야 했다.
출구를 나오자마자 바로 개선문이 보였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하늘도 맑아졌다. 맑아진 하늘을 배경으로 개선문의 윤곽이 더 뚜렷했다. 동규가 개선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개선문벽에 조각이 있는데 오른쪽은 승리라는 의미, 왼쪽은 출정이라는 의미가 있대요."
동규의 이런 설명들이 나와 여행 스타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갈 때 극도의 엔도르핀이 솟구칠 때가 있다. 동규와는 많은 부분의 대화에서 그런 것들을 느낀다.
"어제 혼자 왔을 때는 개선문 가운데 불꽃도 보고 왔어요."
꺼지지 않는 불꽃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병사들을 영원히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0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불타오르고 있다 하니 프랑스 역사가 궁금해졌다. 한국 가서 공부할 것들이 늘어간다.
날씨도 개고 런던보다 춥지 않은 날씨에 기분이 좋았다. 먼저 와본 동규의 이런저런 설명도 좋은 기분에 한몫했다. 몽소공원으로 향하면서 우리의 여행 테마와는 상관없는 명품거리를 걸었다. 서울의 따릉이와는 다르게 거리의 자전거가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해 있었다. 그리고 가로수 마저 자로 잰 듯 심어져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라 그런지 파리 시내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건가 싶었다. 간판은 명품이름 외에는 읽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올림픽 준비로 인해 거리 곳곳에 공사 중인 곳이 많아 소음이 심했다. 몽소 공원으로 가기 위해 샹젤리제 거리 중간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니 규칙을 가지고 정렬했던 것들과 소음에서 해방되었다. 몽소 공원에 도착하기 전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먹을 것들을 사고 싶었지만 주변에 마땅한 곳이 없었다.
몽소 공원에 도착했다. 역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몽소공원 안에는 놀이터가 많았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주변에 학교나 유치원에서 현장학습을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똑같은 교복을 귀엽게 입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천진 난만하게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배경음악으로 틀어 놓은 몽소공원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나는 제주에 있을 때 아이들 소리가 많이 나는 동네에 집을 얻은 적도 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존재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동규는 어제 뿐만이 아니라 파리를 여행하는 내내 매일 몽소공원을 찾았다고 한다. 공원이 주는 즐거움을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런던에서도 이미 느꼈듯이 무언가에 미쳐서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동규는 공원에 미쳐있다고 했다. 조금 어두운 하늘이었지만 하늘과 대비되어 잔디 색이 더 초록초록 했다. 도시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쾌한 향이 코를 즐겁게 했다. 복잡한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적당한 곳을 찾아 동규가 준비한 피크닉 매트를 깔았다. 높이 자란 잔디가 푹신했다. 동규는 피크닉 매트를 선물해 준 친구를 위해 사진을 찍었다. 자신의 선물을 사용하고 있는 친구를 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앉아서 주변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왜 유럽에 문학하는 사람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주변에 생명이 많으니 떠오르는 영감도 숨이 달린 생명처럼 그려질 것 같았다. 동규는 시집을 낸 작가다.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을 때의 마음을 담아서 시를 썼다고 했다. 당시에 동규의 우울감으로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해서 마음이 괜찮아졌을 때 자신을 위로해 준 사람들에게 선물할 시집을 만들었다고 했다. 마침 마지막으로 남은 한 권이 주인을 찾은 것 같다며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감사한 마음이다.
그냥 쓰는 게 좋았던 동규는 전업 작가의 꿈은 없지만 쓰는 행위를 평생에 걸쳐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이때였던 것 같다.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리고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삶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