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숙소

terrible 취리히

by Jason

스위스 여행 3일 차가 되는 날 아침. 나는 숙소를 이동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의 시작을 위해 일찍부터 짐을 싸고 조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동안 호스텔에 머물면서 만난 친구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나누어 주었다. 적당한때에 그것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스위스를 여행하면서는 음식을 균형적으로 먹지 못했다. 유럽 여행의 전체적인 일정에서 스위스 여행을 선택한 것 자체가 비용에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숙소와 식비에서의 긴축정책이 불가피했다. 호스텔에서 조식으로 나오는 버터, 잼, 누텔라등을 챙겨 마트에서 식빵을 사, 끼니마다 함께 먹었다. 저녁에는 가끔 한인마트에서 사 온 라면을 먹었다. 스위스까지 여행 가서 이게 무슨 궁상이냐 하겠지만 어쩌면 오지 못할 뻔한 스위스를 이렇게라도 여행하는 것에 즐거운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인터라켄에서 여행한 스위스는 가장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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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 호스텔에서의 조식메뉴는 매일 같았지만 여행하면서 항상 든든했다. 시리얼이나 치즈, 베이컨, 모닝빵이나 크루아상, 바나나 등 간단하지만 여행하는 내내 끼니를 어떤 것으로 때울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게 해 주었다. 마지막 조식을 마치고 다시 방으로 올라와 짐을 챙겼다. 호스텔의 체크아웃 절차가 조금 특이했다. 사용한 베드의 이불, 베개피와 침대 시트를 벗겨 방 열쇠와 함께 카운터에 반납해야 했다. 2박 동안 운 좋게 혼자 사용하게 된 정든 숙소를 다시 한번 눈에 담으면서 짐들을 챙겼다. 인터라켄은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가방의 무게는 여전했다. 아니, 여행의 피로로 조금은 더 무게가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제나 이동은 내게 무거운 마음을 갖게 한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취리히까지 가야 한다. 기차는 베른에서 한번 갈아타야 했다. 스위스 교통편에 꽤 익숙해졌다. 베른까지 가는 기차는 2층으로 되어 있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갈 자신이 없어 1층에 자리를 잡았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행자 두 명이 캐리어를 끌고 같은 열차 칸에 앉았다. 기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검표원이 들어왔다. 검표원이 열차에 앉은 승객들을 앞 좌석부터 차례대로 표검사를 했다. 나는 스위스 패스를 보여줬다. 당연히 별문제 없었지만 이어 검사를 받은 한국인 2명은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오늘 아침 5시에 종료된 교통 패스를 가지고 기차에 올랐다. 검표원은 현재 시간을 가리키며 이 패스는 종료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한국말을 조금 들어보니 둘은 자매인 것 같았다. 둘은 어쩔 줄 모르면서 잠시 상황에 대해서 상의했다. 언니로 보이는 여행객이 영어를 못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영어 수준으로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검표원은 둘에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다음 역까지의 이용료를 지불하고 다음 역에서 내려 다른 결제 방법을 알아보거나, 베른까지 가는 이용료를 현장에서 지불하는 것이었다. 자매는 베른까지 가는 방향으로 선택한 것 같았다. 몇 프랑이라는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나는 환율을 검색해 보았다. 그들이 지불한 기차표 값은 16만 원이었다. 한 사람당 8만 원이나 되는 한없이 잔인한 상황이었다. 스위스 여행이 좋아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결제하는 순간이 오면 스위스에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라는 마음이 든다.


기차가 베른에 도착했다. 취리히로 향하는 기차로 갈아타기 위해 3번 플랫폼으로 향했다. 대도시 취리히로 향하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사람이 많으면 많은 짐 때문에 주변 승객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기차 1층에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어제 잠에 들기 전 오늘 묵을 취리히의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를 예약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가격이었다. 1박에 6만 원. 3박을 예약해서 총 18만 원을 결제했다. 이 숙소를 제외한 다른 곳은 전부 1박에 10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가격 외에 다른 건 따져 볼거리가 되지 않았다. 숙소를 예약하고 나서야 숙소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확인했다. 그런데 숙소에 대한 평점이나 댓글들이 충격적이었다. 온통 'terrible'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얼마나 좋지 않으면 끔찍할까? 그것도 한 개가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동의하듯이 끔찍한 말들로 가득했다. 지도에 표시된 곳에 숙소가 없다는 이야기, 호스트가 불친절해서 여행을 망쳤다는 이야기, 체크인하기 위해 호스트를 3시간 기다렸다는 이야기, 숙소의 위생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다. 뒤늦게 취소를 하고 다시 숙소를 구하려 했지만 체크인 하루 전이라 5%만이 환불된다고 해 그냥 가기로 했다. 꼼꼼히 알아보지 않은 나의 잘못이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천국 같은 시간을 보낸 인터라켄을 떠나는 발걸음을 유독 무거웠다.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열차 안이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이 열차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부모들이 통제하지 않는 건가? 조금은 불쾌한 생각을 했지만 자세히 보니 내가 타게 된 열차 칸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이 있었다. 취리역에 도착해 짐을 챙겨 문 앞에 서니 창문에 곰돌이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열차칸이라고 표시해 둔 것 같았다.


취리히 허브역에 도착했다. 허브답게 플랫폼을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역 안의 길들이 매우 복잡했다. 체크인 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역에 짐을 맡기고 근처의 맥도널드에 갈 계획이었다. 베른에서의 여행 때처럼 락커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 어려웠다. 취리히 허브역이 워낙 커서 표지판을 따라가다가 표시가 없어지거나 갑자기 밖으로 연결되더니 다른 플랫폼이 나오길 반복했다. 이곳저곳 한참을 돌아다닌 것 같은데 아까 보았던 가게가 나오는 일도 있었다. 짐을 맡겨도 다시 찾아는 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짐을 들고 다니기에는 어깨가 이미 피로해지고 있었다. 플랫폼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넘어오니 역 안에 쇼핑몰 같은 건물과 이어졌다. 이곳이 조금 더 안내소나 락커가 있을 법했다. 우여곡절 끝에 락커를 찾았다. 층 전체가 가게들을 사이에 두고 곳곳이 락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내 가방이 들어갈 라지 사이즈의 락커는 전부 이용 중이었다. 아니 이렇게 큰 역에 락커룸이 이것밖에 없나?라고 불평할 수 없을 정도로 락커의 수는 많았지만 그 모든 락커가 이용 중이었다. 락커 앞 벤치에서 짐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기다려도 봤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나는 그냥 짐을 챙겨 맥도널드로 향했다. 역 안을 오래 헤맨 탓에 어느새 체크인까지 2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취리히는 지금까지 여행했던 스위스의 어떤 곳보다 도시스러웠다. 여행객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나는 다음 여행지인 독일 뮌헨으로 향하는 버스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오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의 3박은 정말 후회스럽다.




맥도널드를 찾아 자리를 잡고 주문했다. 한국에서 항상 먹었던 상하이 치킨버거세트를 주문했다. 세트가 18.9 프랑이었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32000원이었다. 쉑쉑버거 세트 메뉴와 맞먹는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맛이 특출 난 것도 아니었지만 짐을 들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기에 이곳만 한 곳이 없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엔 돈을 더 쓸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는 맛이 그립기도 했었다. 햄버거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서버가 직접 내가 있는 곳으로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콜라가 넘쳐 쟁반에 조금 흘렸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웃으면서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내 웃음이 호의적이었는지 구글에 매장에 대한 리뷰를 남겨줄 수 있냐고 물었다. 콜라를 쏟은 것에 대한 악평을 써달라는 건가라고 잠깐 오해했지만 내가 어떤 멘트를 적고 있는지 옆에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별점 5개와 'good place!'라고 적었다. 서버가 고맙다며 초콜릿을 선물로 주었다.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도 만만치 않은 모양인지 매장 안에 손님이 없었다. 다른 나라의 방문객들은 스위스 맥도널드 햄버거 가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글에 들어가 별점 테러나 악플등을 남기는 것 같았다. 그걸 직원들은 친절한 서비스로 복구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서버와 리뷰를 적는 동안 콜라에 얼음이 전부 녹아버렸다. 애초에 얼음이 많진 않았던 것 같다. 햄버거는 박스에 담겨 나왔다. 종이로 포장되어 있지 않으니 먹을 때마다 내용물들이 밀려 소스가 손에 묻었다. 햄버거를 먹고 체크인 시간을 기다렸다.


숙소까지는 걸어서 10분이 걸렸다. 어제 봤던 리뷰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보통 숙소를 이동하는 날은 몸이 피곤해져 여행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스위스는 모든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

여행하면서 이런 마음을 버리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잘 되지 않는다. 숙소인 것 같은 위치로 도착했다. 나와 비슷한 여행 가방을 멘 서로 다른 나라의 나이 든 여행자 두 분이 서 있었다. 한분은 영어를 사용하는 것 같았지만 한분은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올라 가려하니 한분이 숙소를 찾아온 거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했더니 두 분도 호스트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그들과 밖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두 분은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은 동양인인 나에게 더 이상 말을 붙이진 않았다.


문 앞에서 기다린 지 1시간이 지났을 때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숙소를 예약한 어플로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20분이 더 지나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악명 높은 숙소의 댓글들이 생각났다. '아, 그래 이것이 끔찍한 감정이었구나. 나는 지금 끔찍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정확히 리뷰에 적힌 감정들이 올라왔다. 나는 참지 못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숙소를 찾기로 했다. 좁은 계단들을 올라갔다. 여러 층을 올라가며 보니 가정집들과 섞여있는 아파트 같은 구조였다. 호스텔로 추정되는 곳의 문은 단단히 잠겨있었고 안에 인기척은 없었다. 이미 계단 앞에도 다른 게스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terrible.


그렇게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게스트들은,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같은 감정으로 2시간 넘게 연락 없는 호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점 한계에 다 달았을 때 호스트가 도착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그와 대화가 통하는 누군가가 항의할 줄 알았지만 전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호스트는 게스트들을 어떤 방에 몰아넣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에 호스트는 카드리더기를 들고 게스트들이 있는 방으로 왔다. 스위스는 숙박료와는 별개로 세금을 결제해야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정책이었지만 결제를 요구하는 호스트의 태도가 갈취로 느껴졌다. 저런 태도로 이 돈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격을 논할게 없는 법이지만.

그리고 다음에 우리에게 한 이야기가 더 가관이었다. 방 정리가 아직 되지 않았으니 정리가 될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어쩌자고 이곳에서 3박을 예약했을까?

스위스의 마지막 기억이 악몽이 되지 않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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