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행의 시작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베른 여행의 감동을 소중히 안았다. 인터라켄은 어떤 곳일까? 나는 하루 만에 스위스라는 나라에 푹 빠졌다. 상상하는 것 이상의 모습이 언제나 눈앞에 펼쳐졌다. 내 마음은 다시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수련회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마음으로 의자에 앉은 채 발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기차가 천천히 출발하자,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푸른 나무들이 나란히 서서 기차의 속도를 맞추듯 흔들리고, 그 사이로 흐르는 강물은 은빛으로 반짝이며 나를 끌어당겼다. 강물을 바라보면 세이렌이 선원들을 홀리듯 나도 따라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산들은 하늘과 맞닿아 뭉게구름에 가려져, 신비로운 비밀을 간직한 듯 위엄 있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전설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수호신 같았다. 저 멀리 산 꼭대기의 덮인 눈은 사람에게 한 번도 길들여지지 않은 채 순수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풍경은 변화무쌍했다. 작은 마을들을 지날 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려 애쓰는지 모르지만 마을을 둘러싼 산과 강이 오랫동안 이 마을들을 지켜왔는지 모른다. 그 숭고함을 아는지 사람들의 표정은 항상 빛이 났다.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속에 감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벅차도록 아름다운 것을 볼 때는 불쑥 눈에서 뜨거운 것이 차오를 때가 있다. 나는 그 뜨거운 파도에 휩쓸려 이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몽환적인 상상을 하는 동안 무릎 위에 있던 손에 뭔가 걸리적거렸다. 버스에서 묻은 껌이었다. 껌은 이곳이 깨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인터라켄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맑아졌다. 안내 방송이 나올 때 짐을 챙겨 기다렸다. 부드럽게 정차하는 기차의 문을 열고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짊어진 나는 인터라켄역을 나섰다. 첫눈에 들어온 인터라켄의 풍경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하늘을 찌를 듯한 눈 덮인 산들이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고, 그 아래 펼쳐진 초록색의 들판은 채도를 한껏 끌어올린 사진 같았다. 산과 들, 그리고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광경의 향기는 매우 상쾌했다. 게스트 하우스까지는 15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눈 둘 곳이 많아 지루하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에 간단히 저녁거리를 구매할 편의점을 봐두었다. 산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들판 위에 착지했다. 스위스의 하늘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천국을 밟고 있는다는 것은 신의 마음과 같을까. 마을을 가로지르는 소담한 강줄기는 바닥이 전부 보일 정도로 맑았다. 산에서 눈이 녹아 마을로 흘러드는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는 역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었다. 나무로 쌓아 올려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체크인을 하려 했지만 인적은 없고 카운터 앞에 내 이름이 적힌 봉투만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방열쇠와 같은 방을 예약한 사람이 없어서 혼자 쓸수 있으니 편하게 쉬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예상치 못한 행운에 마음이 들떴다. 로비 중앙에 낡은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나와 내 가방무게가 엘리베이터에게 신세를 질 것 같아 계단을 이용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방이었다. 햇빛 덕분인지 방안에 온도가 적당했다. 방안에는 나무로 만든 침대가 4개 있었다. 적당한 곳에 짐을 풀고 창문으로 가 커튼을 걷었다. 창밖엔 기차를 타고 오면서 봤던 아름다운 설산이 서 있었다. 창틀을 통해 바라보니 풍경을 그려놓은 액자 같았다.
짐을 풀고 오랫동안 감지 못한 머리부터 감았다. 파리부터 스위스의 인터라켄까지 꼬박 20시간이 걸렸다. 내 몸과 옷에서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니 개운했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데 이대로 여행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이 창문만 바라볼 수 있어도 괜찮겠는데?라는 위험한 생각을 했다.
저녁거리를 구매하기 위해 숙소를 나와 아까 봐두었던 편의점으로 향했다. 나라마다 매번 달라지는 편의점들도 여행의 재미 중 하나였다. 오늘은 여행 경비를 위해 평소 참고 있었던 맥주도 구매하기로 했다. 마트 이곳저곳을 구경했지만 살인적인 물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충동구매 할까 필요한 것만 사서 빠르게 빠져나왔다. 공원에는 강아지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나도 반려견을 키우는 견주로써 강아지가 행복할 때의 표정을 알고 있다. 주인을 따라 걷는 강아지들은 표정은 분명히 행복해 보였다. 주인과 발을 맞추다가도 가끔 주인을 올려다보며 주인을 살폈다. 나도 이런 자연에서 행복한 발걸음으로 다닐 수 있다면 다음 생에는 인터라켄의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
인터라켄에서의 여행은 이제 스위스 여행의 시작일 뿐이었다. 변화무쌍한 이곳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평소에 나는 긍정적인 감정을 이렇게 마음껏 느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인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내가 알고 싶은 나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