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스튜
밤새 비가 왔다. 주차해 놓은 차들은 흙먼지로 얼룩져있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몰타까지 사하라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오는가, 낡은 건물 벽에서 떨어져 나오는 흙먼지 일거다, 그래서 건물들이 사막색인가, 사람들이 비가 와도 우산 쓸 생각을 안 한다, 뛰어다니는 사람이 없다 등등 이런저런 추측과 감상을 얘기하면서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기로 한다.
몰타에 도착한 후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목이 칼칼했는데, 오늘은 완전히 목이 잠겨버렸다. 나의 동행자는 각종 야채와 카레를 묽게 끓여서 따끈한 스튜를 만들어준다. 목감기에 걸린 나를 위한 특별식이다. 카레 스튜 한 사발을 먹는 동안 얼굴에서 땀이 나도록 몸이 따뜻해지고 따가웠던 목도 편안해진다. 식사를 마치고도 오랫동안 식탁에 앉아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에 나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틀간 그녀의 고민과 갈등을 알 것 같고, 그 위로 한 발짝 내딛고 있는 그녀의 너그러움이 느껴져서 참으로 다행이다. 자꾸만 뒤돌아보는 대원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대장의 심정이 오죽할까. 내가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출발 전에 만든 트레블 체크카드가 결제가 안돼, 다시 한번 확인차 혼자 숙소를 나선다. 무언가 맛있는 걸 사서 동행자에게 건네고 싶어서다. 카드를 만들 때 해외결재차단을 풀지 않은 게 원인이거나, 한국 시간으로 새벽 12시 전후로는 해외 결재나 송금이 안될 거라는 생각에, 시험 삼아 지금 카드사용이 되는지 확인해 보려는 거다. 여전히 실패.
공동으로 사용하는 카드로 고소한 빵과 딸기, 가지. 올리브를 사들고 귀가한다.
몰타에서 8일간 머무는 데는 숙소비 외에 도시세 또는 환경세라는 것을 내야 한다. 그걸 결재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다른 나라에 와서 살려면 많은 단계의 절차를 모두 완수해야 한다. 그 모든 일을 동행인이 하고 있다. 비가 오는데 오늘따라 난방이 안된다. 호스트와 연락을 취하지만 별다른 대답이 없더니, 어렵게 도시세 결재에 성공하고 나니 바로 두시에 방문하여 해결해 준단다. 돈이 무섭다.
내 여행카드 사용법은 시라쿠사에서 합류하는 언니들에게서 해결방법을 찾기로 하는데, 방금 두 언니의 카타니아행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날아든다.
해외여행,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2025.3.25. 비 오는 오후 몰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