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해외여행
김영하 작가의 시칠리아 기행기를 아주 좋아한다.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사유가 함께 있어서 재미있다. 여행하는 순간의 생각들을 즉석에서 녹음하는 모습에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그의 목소리가 멋지다는 걸 인지한 건 시간이 좀 더 흘러서이다.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이 시칠리아 여행기이다. 책 이전에 세계테마여행을 촬영한 후 부인과 둘이서 다시 이곳을 찾아 여행을 한다. 어떤 곳은 부인과 함께 둘러보고는 부인을 숙소에 데려다 놓고 다시 혼자서 그곳을 찾는 여행방식이 흥미로웠다.
그의 소설 중 <오직 두 사람>이 튀니지 여행 중 의미 있게 떠오른다. 동행자와 나는 튀니지에서 시칠리아 그리고 몰타까지의 여행 중에는 오직 두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 한 명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막을 건너는 카라반의 낙타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적합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게 아니라 삶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서로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자기 만의 통제가 없으면 여차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동행자는 눈 위에 얇은 손수건을 얹고 잔다. 그게 숙면을 돕고, 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밤에 불을 켜도 상관없다고 미리 알려준다. 보기와는 다르게 소음에도 밤의 불빛에도 별로 게의치 않는다며 여러 번 나를 안심시킨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밤에 불을 켜고 침대 위에서 기록의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나마 다행이고 고맙다. 지금도 동행자는 색색 잘 자고 있다.
가끔씩 투룸을 쓸 때도 있지만 투베드면 다행이고 퀸사이즈 침대에서 함께 지내는 경우도 많아서 절제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글을 적는 시간은 한밤중이나 새벽이 대부분이라 동행자가 용인하지 않으면 내가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것 말고도 서로를 배려해야 할 부분은 일상에 널려있다.
그러나 총괄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인 걸 알고 왔고, 다른 점을 그대로 존중하고, 기분이 상할 정도면 바로 얘기를 해서 감정이 쌓이지 않게 해소하고, 쿨하게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여행을 안전하게 마치는 목적과 희망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그런 것들은 아주 사소한 문제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나의 더 큰 목적과 희망은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절대로 동행자를 카라반의 낙타쯤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삼 개월 동안 아니 그 이후의 삶에 있어서도 내 삶을 고양시킬 친구로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 있어서 동행자와의 관계 맺음은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2025.3.3 아침 7:10
Hotel Nour 창문으로 아침 해가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