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여행 301
튀니스 숙소를 떠나 이틀 묵을 비제르티에 일찍 도착하여 예약한 숙소를 찾아간다. 루아지버스 종점에서부터 바닷가를 지나 한참을 들어와서야 우리의 숙소가 있었다.
택시기사는 계속 피니쉬를 외치며 그만 가기를 요구한다. 결국 구글앱이 가리키는 목적지를 400m 남겨두고 택시에서 내린다. 계속 시계를 가리키는 택시기사를 이해할 수 없었고, 택시비를 더 받으면 될 텐데 가다 말고 끝내자는 택시기사는 또 처음이라 우리도 호기롭게
"오케이, 피니쉬! "를 외치며 짐을 내렸지만 금방 후회를 한다. 길이 엉망이라 등에 배낭을 하나씩 메고 20kg이 넘는 케리어를 끌고 가는 게 쉽지가 않았다.
아파트라고는 하는데 난생처음 와보는 어느 도시에서 이틀밤 묵을 집을 찾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여행의 고수인 동행인도 도시를 이동하고, 새로운 숙소에 입성하는 게 가장 신경이 쓰인다고 말한다.
힘겹게 찾아든 숙소는 아직 청소 중이고 한 시간쯤 후에 연락을 준다며 우리의 짐만 들인다. 우리는 점심식사도 하고 차 한잔 하면서 새로운 도시를 탐색해 보자며 도심 쪽으로 되돌아 들어간다. 식당으로 보이는 곳이 여러 군데 있었으나 문이 닫혀있다. 카페도 자주 눈에 띄었지만 영업을 하는 곳은 없고 물청소를 하는 곳이 몇 곳 보인다. 200m 정도에 가게가 있다고 알려주는 점잖게 생기신 분의 지시대로 곧장 갔다가 우회전을 해보지만 식당 문은 닫혀있다.
무슨 일일까?
토요일이라 그런가?
바닷가 도시 비제르티에 오면 뽈보랑 생선요리를 제대로 먹어보겠다는 기대에 부풀어있던 우리는 점점 기운이 빠졌다. 건너편 도로가에 화덕에서 무언가 굽고 있는 식당이 보여 차도를 건너 다가가 본다. 앉을 테이블도 없는 좁은 가게에서 중년의 남자가 토마토와 커다란 고추를 겉이 검게 변하도록 부채질을 하면서 굽고 있다.
그는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더 이상은 그의 말을 추측도 하기 어렵다. 번역기를 아랍어와 한국어로 세팅하여 식당주인의 입 가까이 댄다.
"해가 지면 먹을 수 있다."
아하, 라마단!
이슬람국가 여행 경험이 있는 동행자는 라마단을 외치며 난감해한다.
오늘부터 3월 30일까지 라마단이란다. 해가 지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단다. 한 달간.
어이쿠. 이를 어쩌나. 그렇다면 어제 자이투나 모스크의 예배와 음식 나눔은 라마단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치즈가게, 올리브가게, 정육점, 빵집, 동네 마트 등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아마도 해진 후에 먹을 것들을 미리 장만하는 듯했다.
우리는 먹음직스럽게 생긴 딸기와 계란 네 알, 엄청난 양의 오렌지. 그리고 물을 사들고 귀가한다. 한 보따리의 오렌지가 1디나르. 한국돈 450원이다. 오렌지로 배를 채우리라 작정하고 한 보따리를 산다. 필요한 만큼 몇 개만 사도 가격은 마찬가지이다.
숙소에 들어온 우리는 방을 정하고 이것저것 시설을 살펴보면서 점점 암담해진다.
침구에 얼룩이 보일 정도로 청결상태가 좋지 않고 거실바닥에는 먼지자국이 그대로 있고, 부엌에는 냄비도 포크도 없고, 수건도 하나 걸려있다. 서로 상황이 인지되었지만 언급하지 않은 채 배가 고프니 우선 점심부터 먹기로 한다. 휴대용 버너에 가지고 다니는 냄비로 진짬뽕 하나를 끓여 나눠먹는다. 사온 계란이 워낙 작아서 네 알 다 라면에 넣어 단백질을 보충하고, 오렌지와 딸기로 후식을 먹는다. 붉고 탐스러운 딸기를 입에 넣고 오렌지 향을 맡으며 기분을 전환해 보려고 애써 보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동행인은 호스트에게 불편하고 부족한 점을 문자로 보내고, 주인은 곧 해결해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주인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새 이불과 냄비를 사들고 온 주인을 대면하여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주인은 청소를 했으며 이 지역이 먼지가 많은 지역이며 수건은 둘이서 하나를 쓰고, 얼룩지지 않은 베개도 있으니 그것을 쓰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처음 손님이란다. 우리는 혹시 여기서 자야 한다면 방이 아니라 거실 소파에서 자야겠다는 각오를 한다. 동행인은 이 숙소는 준비가 안되어 있으며 그동안 보아온 곳 중 최악이며 에어비엔비 리뷰에 그대로 적시하겠다고 하였다. 결국 주인은 취소를 원하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허락한다.
이곳에서 잠을 자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사이트에 접속하여 취소하고 환불확인 까지 하고 짐을 뺀다.
시간을 낭비하고 불쾌감도 들었지만 또 하나의 경험을 한다. 호스트도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는 공부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택시를 타고 시내 쪽으로 이동하여 Hotel Nour로 숙소를 잡는다. 오늘은 더 이상 신경을 쓰며 새로운 집주인과 연결하는 작업을 하기에는 지쳤다.
전화위복이랄까.
이참에 호캉스를 즐겨볼까 한다.
2025. 3.1 비제르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