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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의 고양이

튀니지여행 306

by 배심온

튀니지 28일 여행 중 마지막 닷새를 보낼 곳으로 시디부사이드에 숙소를 잡았다. 조금 한적한 곳에서 여유를 부리자는 계산이었다.

사진을 보고 선택한 숙소인데, 맞다. 사진과 다른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이 사진이었다는 사실을 곱씹지 않은 대가는 우리의 몫이다.


숙소 내부에 계단이 있다는 것은 거실이 반지하층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정보였으며, 멋져 보였던 테라스는 그냥 의자 두 개와 테이블 하나가 놓일 만큼의 공간이 전부였다. 그나마 그 테라스는 고양이에게 양보해야 했다.


호스트가 테라스에 세탁기가 있다며 미안하다고 할 때는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그가 집열쇠를 건네고 돌아간 후에야 베란다에 새끼 고양이 세 마리와 어미 고양이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을 열자 어미 고양이는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곧 호스트에게 고양이를 데려가라고 문자를 남기고, 그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을 주었으나 고양이를 데려갈 의지는 없어 보였다.

첫날밤은 밤새 고양이 소리에 시달리며 잠을 못 이루었다. 다음날 두가 여행을 다녀온 우리는 고양이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새끼 고양이에 손을 대면 어미가 버린다는 얘기도 있고, 튀니지인들이 고양이에게 관대한 것처럼 우리도 진정한 여행자로서 고양이와의 생활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지기 전에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없어서 주로 식재료를 구입해 식사준비를 한다. 식재료 중 치즈를 먼저 고양이에게 건넨다. 다음날에는 닭고기와 생수까지. 고양이와 우리는 이제 서로를 보고 놀라지 않았고, 서로 헤치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눈빛으로 나누었다. 세탁기 사용을 위해 베란다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고양이가 남긴 음식물도 치워주고 새끼에게 젖을 잘 물리는지 안부도 전한다.

하루 저녁에는 또 다른 고양이가 찾아와 우리가 반했던 테라스 그 의자에 근엄하게 앉았다가 돌아갔다. 우리는 그를 새끼 고양이의 아빠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숙소의 테라스에 한 번도 나아가 앉아보지 못했다. 세탁기 사용도 포기하고 손빨래를 한다.

우리가 이 숙소를 떠날 때쯤 새끼 고양이들은 눈도 뜨고 혼자 움직일 만큼 크려나.


또 다른 어떤 여행자가 파란색 제비가 하얀 벽을 장식하고, 새파란 테라스 창틀이 햇살에 빛나는 이 집을 찾아들겠지.


2025 3. 6 저녁 시디부사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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