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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Marsa!

튀니지여행 306

by 배심온

오늘 여기 시디부사이드에는 비소식이 있지만 10시 반쯤 우산을 챙겨서 또 길을 나섭니다.


도보로 45분쯤 좀 더 북쪽에 있는 라 마르샤라는 바닷가로 갑니다. 라 마르샤는 피서객을 위한 휴양지 느낌이 납니다. 튀니지의 여타 도시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쓰레기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작지만 꽤 세련된 도시네요. 마을에 접어들면서 환전소도 보였어요. 남은 삼일 동안 쓸 튀니지 돈이 부족하지 않은지 확인하고 그 돈이 남지 않게 쓸 궁리도 합니다. 튀니지 돈은 반출이 금지되어 있고,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쓸 수가 없으니 남은 돈은 기념이 될만한 마그넷도 사고, 슈퍼에서 장을 보는데 다 써버릴 예정이에요. 생선을 사서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고 생선조림을 하고, 갑오징어도 사서 데쳐먹을 거예요. 유로의 시세도 확인합니다. 한 달 전보다 한국 돈은 가치가 더 떨어졌네요. 탄핵정국 때문일까요?


여행을 하면 고려해야 할 게 정말 많아요. 지역의 날씨도 살펴야 하고. 환율도 확인해야 하고, 남은 돈을 어떻게 쓸지도 꼼꼼히 챙겨야 해요. 동료가 여행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여행은 문제해결능력의 총체적 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젎은이들에게 여행을 적극 권합니다. 물론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권하고요. 어느 강사는 퇴직 후에는 아무도 찾는 이가 없을 테니 서둘러 귀국하지 말고 긴 여행을 하라고 권하더군요.


제대로 된 커피집에서도 원두만 팔 뿐 커피를 마시는 건 허용하지 않네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이렇게 철저하게 라마단을 지키다니. 외국인은 어쩌라고. 한 달간 경제적 타격이 클 텐데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심지어 라마단 기간에는 박물관이나 관광지 입장도 한 시간씩 단축을 하는 바람에 난감할 때도 있었어요.


튀니지 사람들은 라마단 한 달간 낮에 음식을 안 먹을 뿐만 아니라 술도 철저히 금한답니다. 동네 가게나 웬만한 마트에서는 술을 볼 수가 없어요. 함마메트와 토주르의 대형 마트에서는 술을 팔긴 했었는데, 별도의 공간에서만 팔더군요. 그래서 저는 튀니지 여행 동안 non alcohol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몸도 건강해지고 시간도 더 알뜰하게 활용하게 되더군요.


이들과 함께 라마단의 의미를 새겨볼 만도 합니다. 신에게 복종을 약속하고, 음식이 없는 가난한 이들을 함께 생각한다는 의미 말이죠.


비록 같은 신은 아니지만, 저는 여행하는 동안 내내 성호를 긋고 식사를 했어요. 매끼 일용할 앙식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 기도를 드렸답니다. 사실은 세례를 받았을 뿐 성당도 교회도 잘 다니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행 중에는 아프지 않고, 따뜻한 집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하게 되네요.


문득 재작년 함께 일했던 송선생님의 카톡 프로필이 생각납니다.


"남의 접시를 들여다보지 마라. 내 것보다 부족한지를 살필 때 말고는"


가슴을 쿵 치는 문장이었어요.


La Marsa!

해안선이 넓게 펼쳐진 잔잔한 바다가 언덕 아래로 보입니다.

바라만 볼 수는 없지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들고 하염없이 모레사장을 걷습니다.

한 사람, 나처럼 발을 적시며 해변을 걷고 있는 남자가 있었어요. 동료는 멀리서 각각 마주 보고 걷다가 서로 가까워졌다가, 스쳐 지나가 다시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었어요. 음악을 배경으로 빠르게 연결하면 한 편의 단편영화가 되겠지요?


원두 150g을 사들고 우리는 다시 씩씩하게 시디부사이드 숙소를 향해 걷습니다. 도중에 마트에서 생선을 사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내려서 한잔씩 마시며 여유를 즐깁니다.


내일은 카르타고에서 시간을 보내고 모레 오후에는 배를 타고 시칠리아 팔레르모로 갑니다. 드디어 튀니지를 떠나며, 여행 제1장을 마칩니다.

뱃길도 무사하길ᆢᆢ


2025.3.6 시디부사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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