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여행 305
시디부 사이드에 숙소를 두고 두가를 다녀오는 길은 꽤나 험난하다.
우선 메트로를 타고 튀니스 마린역까지 나와서 택시로 북부터미널로 이동하여 거기서 다시 테부르숙까지 루아지버스를 이용한다. 거기서부터는 다시 택시를 타야 하는데 루아지 버스기사와 두가 택시기사 간에 모정의 약속이 되어있는지, 두가 유적지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우리는 인계된다. 사막을 여행할 때도 이렇게 여러 단계로 인계된 적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시간 낭비 없이 바로바로 연결되어 의외로 수월한 여행이 되었다. 아마도 저렴한 택시 이용이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두가에 도착한 시간이 11시인데 한시 반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택시기사는 사라진다. 택시비가 얼마냐는 질문에는 답변도 않는다. 나중에 얼마를 요구할지 알 수 없으니 미리 흥정을 할걸 그랬나 후회하지만 기사는 이미 떠나고 없다.
이곳 두가는 튀니지 북부 내륙 600m 정도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사방으로 걸릴 것 없이 트인 푸른 초원은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롭다.
기원전부터 살았던 누미디아 왕조를 로마가 점령하여 로마 시민권까지 부여하며 부흥시킨 도시이다. 4세기까지 번성했던 도시인데,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가 들어오면서 쇠퇴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로마인들이 이곳 아프리카에 로마의 도시를 만들었을 정도로 중요한 가치를 지녔던 곳이다.
두가는 어느 역사학자가 fine size라고 표현할 정도로 도시의 형태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꽤 넓은 들녘에 신전, 포럼, 목욕장, 원형경기장, 극장, 개인 저택 등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여기저기 있어야 할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원형경기장은 거의 완벽한 모습이다. 한낮의 그림자까지 길게 늘어뜨려 위엄을 더한다.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은 성벽 안과 밖을 넘나들며 원형경기장 안까지 들어온다.
리비아, 카르타고, 그리스, 라틴어 등의 비문이 적혀있는 2000점이 넘는 돌들은 금석학 켈렉션을 이루고, 17세기 동안의 긴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다. 그 이야기가 궁금해 열심히 사진을 찍어둔다.
삶은 계란, 오이, 빵으로 간단히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두가의 공기도 바람도 햇살도 함께 흡입한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곳이 '바람과 장미의 정원'이 아닐까? 혹시 그 옛날 카이사르가 여기에
잠깐이라도 머물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택시기사와의 약속시간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피어나는 봄꽃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두가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저기 꼭대기에 모자를 눌러쓰고 태양을 마주한 채 반쯤 누워 이 고귀한 유적지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튀니스행 루아지 버스를 연결해 주는 택시에는 한국 아줌마 한분이 마련해 온 김밥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암 발병 후 목숨을 내놓고 혼자 여행 중이라고 한다. 택시기사가 한국 아줌마들의 수다에 질려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오전에 만났던 루아지 버스기사분을 다시 만난다. 이분의 수다는 한국 아줌마를 능가한다. 라디오 볼륨이나 줄여주면 좋을 텐데.
버스든 택시든 이들은 늘 볼륨을 높여 라디오를 듣는다. 음악이 흐를 때는 차라리 낫다. 경전인지 대담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늘 듣고 있어서 관광객인 우리도 그 소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하루 다섯 번씩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까지, 튀니지는 소리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들은 또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동료가 자일리톨 사탕을 건네지만, 루아지 버스기사는 라마단이라며 먹지 않고 운전석 앞에 놓아둔다. 해가 지면 먹겠다고.
종교는 이들의 먹는 것까지도 왼벽 하게 장악하고 있는 듯하다. 외국인 말고는 낮에 음식을 입에 넣는 사람을 못 봤다. 물조차도ᆢᆢ
루아지 버스기사는 잠깐 버스를 세우고 길가의 가게에서 빵을 사서 지인인 듯한 손님과 나눈다. 빵 냄새가 어찌나 구수한지 우리도 사겠다고 하니 기사분은 넓은 천에 싸여있던 빵 세 개 중 하나를 우리에게 건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돈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고 순수한 호의였다. 얼른 맛보라고 하는데도 나와 동료는 라마단이니 집에 가서 해가지면 먹겠다고 사양한다. 튀니지인들은 우리를 기특하게 생각하는 눈치다. 우리가 말한 슈 크라, 라미단 단어를 함께 따라 한다.
9인의 루아지 버스 안은 왁자지껄 흥겹다.
빵은 화덕에서 구워내어 담백하고, 약간의 민트향이 난다.
두가를 다녀오는 길은 튀니지의 인상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
2025. 3.5 저녁 시디부 사이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