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여행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의 샌들 밖으로 보이는 까만 발을 보고 나는 혼자 미소 지은 적이 있다.
'저렇게 발이 그을리도록 어디를 다닌 걸까?'
그가 순례자처럼 고귀해 보인 적이 있다.
2월부터 시작한 여행은 한 달이 지나 3월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햇살은 부드럽다. 그래도 썬크림도 바르지 않고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손은 한 달간 꽤 그을러 있다.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리스트를 확인하며 꼼꼼히 챙기고, 출발을 하루 앞두고 손톱과 발톱을 바투 깎는다.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듯.
손톱깎이를 챙기면 될 일이지만 여행짐을 쌀 때는 머리카락도 줄이라고 했으니 손톱깎이는 여행가방에 넣지 않는다. 그러면서 신발은 신고가는 것 외에 두 개를 더 넣었으니 손톱 발톱이 자라는 건 살피지 않겠다는 생각의 반영인 셈이다. 최대한 짧게 자르다 보니 지난 여름에 물들인 발톱의 봉숭아물은 거의 다 깎여나간다.
29일 후 손톱은 잘라내야 할 정도로 자랐다. 발톱은 신경 쓰이지 않은 걸 보니 아직 지낼만하고, 손톱보다는 더디게 자라는 것 같다. 인도에는 평생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거나 손톱을 자르지 않는 기인도 있다는데 나도 3개월 정도 길러볼 예정이다. 그렇게 작정한다기보다는 손톱깎이가 포기하는 짐 1순위가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세 달간 손발톱이 자라는 걸 지켜보게 생겼다.
지베르티 메디나를 산책하는 동안 만물상의 잡동사니 속에 손톱깎이가 보였지만 나는 외면했다.
머리카락도 많이 자랐다.
출근을 한다면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하다며 진작에 미용실을 찾았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굳이 단정할 필요도 없고 내가 불편하지 않다면 좀 지저분해지는 것도 상관없다.
그러고 싶다. 나의 신체적 변화를 가늠해보고 싶다. 어떻게 변하는지.
여행은 그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여행 한 달 만에 찾아온 나의 신체적 변화는 또 있다.
여행을 막 시작할 때는 시차와 긴장감으로 염소똥 같던 것이 이제 사람의 그것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GNV는 밤 10시 반이 되어서야 승선 절차를 시작했는데 새벽 다섯 시쯤 튀니지항을 떠나 시칠리아 팔레르모로 항해를 시작했다고 동료가 전한다. 자동차를 적재하느라 또 그렇게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나는 23kg의 케리어와 또 다른 배낭을 선상 5층 객실로 옲기느라 기진맥진하여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아침에서야 일어난다. 객실 커튼 밖은 망망대해다. 지중해다.
이제 디나르가 아니라 유로로 커피 값을 치르고 지중해의 윤슬을 즐긴다.
저기 팔레르모 항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행의 제2막이 시작된다.
2025.3.9 낮 12:40 GNV 객실 로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