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본인의 글을 쓸 생각을 다했어요?”
두 권의 책을 내니,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주로 남의 글을 쓰기만 하니 언제부터인지 내 글이 쓰고 싶었고, 사실은 내 안의 불안이나 걱정을 글로 꺼내어 정리해보고 싶었죠. 글이 나에게 일종의 포크레인, 삽질 같은 걸로 보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걱정와 불안이라는 놈들은 내 머릿속을 한참 휘젓고 다니다가 휘발되곤 합니다. 그것들이 온 정신을 흐트러놓을 때는 창 밖을 보고 멍을 때리거나 한참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죠. 언제부터인가 그 시간들이 아까워 그걸 나열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종종 끄적이게 되었습니다.
<담백하게 산다는 것>의 저자 양창순 정신과 의사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불안하다는 현 상황을 글로만 써보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안한지, 무슨 걱정이 있는지 있는대로 다 적어보고 해결방안까지 있다면 써봐도 되는 거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어 능력에 해당하는 좌뇌가 일을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차분함 정도는 되찾을 수 있다고 말이죠.
이직을 하고 이틀을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너무 쉽게 옮긴 거 아닌가 생각이 들다가, 똥차를 피하려나 늪에 빠지진 않았는지 뭐 이런 저런 생각이 지금까지 온 몸을 휘감고 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걷고 또 걷다가 짙은 커피 한잔에 책상에 앉았습니다.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온도를 찾다>의 저자 정여울은 걷다 보면 열망과 걱정으로부터 내 슬픔과 집착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고요. 나에게 만보 걷기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똑같습니다. 나를 움켜쥐고 있는 상념들로부터 내가 원하는 만큼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불어 걱정과 불안이라는 잡히지 않은 추상에서 구체적으로 오밀조밀 풀어나가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일단 글을 쓰는 내가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아니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인지, 가능성이 있다면 해결대안은 있는지 구체적으로 적을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니면 의견을 구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써야겠습니다. 그 정도까지 풀어써보고 숨 고르고 쓴 글을 보게 되면, 걱정하고 불안에 떠는 나와의 틈이 생기게 됩니다. 그 간격을 더 넓히고 좁힐 수 있는 건 결국 내 선택이죠.
즉 걱정하고 불안한 나로부터 떨어져 담백하고 차분한 나까지 가기 위한 진단과 방법 등은 이미 구체화되어있습니다. 실천과 실행은 나의 몫, 마음이 어지럽거나 걱정 한가득일 때 한숨만 내쉬어 주위에 나쁜 공기 퍼트릴게 아니라, 글쓰기에 매달려야지 백날 머리 싸매면 뭐하겠는가요. 스웨덴 속담에 ‘걱정은 종종 작은 것에 큰 그림자를 준다’고 합니다. 글쓰기로 그 큰 그림자를 깨끗하게 걷어버리자고요. 그리고 까먹지 맙시다. 불안하고 걱정만 해서 일이 해결되면 모든 사람들이 걱정만 하고 불안에 오들오들 떨겠네. ^^
그 시간에 조용히 책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