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3.02 일기장 발췌 -
정말이지, 마음이 고단한 요즘이다. 직업적으로 어떤 가치관과 방향성을 가지고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또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나조차도 알 수 없어 하염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마음에 시달리고 있다. 그 마음이 너무도 답답하고, 또 답답해서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새벽마다 눈시울을 붉히는 중이다.
퇴사를 하고 쉼을 가지는 동안 머리를 싸맸던 직업적 고민의 끝은 다시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었다. 딱 일 년만이라도 더 해보자. 내가 속한 직업 속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까지 경험해 보고 미련 없이, 스스로가 떳떳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 일을 그만두자고 다짐했었다. 후회와 미련이 없을 만큼 부딪혀 경험해 본 뒤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도 뒤 돌아보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직을 하고 보니 지난 4년간의 시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부족한 점들 투성이었다. 스스로에게 수치스러울 정도로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기본기도 없는 물경력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직업적 자존감은 계속해서 주저앉고 있었다. 되돌아보니 건축과 인테리어 사이에서 애매한 포지션에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고, 이전 회사 자체가 신입으로 다니기엔 크게 성장할 수 없었던 환경인 것도 맞았다. 조금 더 빨리 이직을 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을까. 훨씬 성장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허황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탓하는 것도 과연 맞는 것일까? 나는 지난날 동안 일과 삶을 분리한 채로 살아왔다.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디자인과 마감재, 시공법, 디테일을 비교하며 공부하거나 스스로 회사 밖에서 노력하지 않았다. 왜 노력하지 않았을까? 내겐 그저 그만큼의 관심과 흥미였던 것이다. 업무 시간 이외에 더 시간을 쏟고 싶지 않은 만큼 이 일을 애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채로 시간이 지날수록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이 일에 적성이 있긴 한 걸까, 나와 맞는 성향의 직업인 걸까에 대한 의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야근과 철야에 몸과 마음은 지쳐갔고 적은 연봉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남들과 비교하며 불안한 심리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성취감 / 자아실현 /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 / 디자인적 성장과 배움
vs
워라밸을 지키며 보다 업무 강도가 낮은 편한 일 / 높은 연봉 / 자기 계발 시간 확보
아예 이 시점에서 이 직업을 놓아 보내주는 것도 고려해 보았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일 테지만 여기서 물러서는 것은,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의 싸움에서 지는 듯한 느낌. 나의 마음가짐을 보았을 때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 맞는지, 그래서 결국 내가 넘어야 할 산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버티고, 이겨내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차라리 빨리 다른 일을 찾는 것이 덜 미련하고 현명한 길이 아닐까? 포기하는 것도, 때로는 놓아버리는 것도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언젠가 관둘 디자이너라는 일.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질질 끌며 안고 가는 시간일지, 그래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지 고민이 되었다.
너무나도 힘에 부치는데도 질질 끌며, 끝을 봐야 후회가 없겠냐고 되묻는 시간들. 그 속에서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이 떳떳하겠다고 두려워했던 산을 경험하고, 기어코 그 산을 넘어 보고서 그만두는 것이 결국엔 시간 낭비가 되진 않을지 걱정되는 복잡한 마음 투성이. 터져버릴 것 같은,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소용돌이치는 마음. 매일 다양한 마음이 교차했다.
어떻게 힘들지 않은 일이 있겠냐만은 이제 더는 그만 힘들고 싶다. 쉽고 편하게 살고만 싶다는 생각이 날 괴롭혔다. 그러나 다들 말하길,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들 하지 않는가. 결국 힘들어도 즐기면서 이겨낼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베스트라 생각한다.
디자이너로서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감도를 갖게 되면 그만두었을 때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소 짓게 될까, 여기서 관두는 건 패배한 것 같은 생각에 꼬리표처럼 언제까지나 마음 한 켠 응어리처럼 남아있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첫 회사? 과연 나는 환경을 탓하기만 하는 어리석고 나약한 사람인 걸까? 혹은 정말 내가 속했던 환경이 나를 성장하지 못하게 만든 안타까운 현실이 맞는 걸까? 그저 운이 좋지 않았던 걸까?
수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긁고 할퀴어 엉켜버리는 듯한 느낌의 하루를 보낸다. 내가 원하는, 갈망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겠는 답답함에 눈물을 달고 살고 있다.
현재와 미래를 향한 가치관과 직업에 대한 고민과 번뇌. 반복되는 마음의 고달픔. 누구나 찾아올 법한 청춘의 지나가는 성장통이라 생각됐다. 나는 늘 확신에 차 있었고, 명확한 길로 걸어가고 있다고 믿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무엇도 선명하지 않은 희미한 연기 속으로 서서히 잠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살아가며 처음 겪어보는 생경한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미래를 하염없이 자문하며 찾아가는 이 과정으로 인해 나는 더욱 단단해질 것임을 알고 있다. 비바람에 흔들린들, 저마다의 타이밍에 맞는 꽃을 피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앞서 다시금 열정을 불사 질러 보겠다고 옮긴 세 번째 회사는 아니나 다를까, 내게 또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었다. 차곡차곡 쌓여온 긴장감과 부담감, 스트레스들이 증폭되기라도 한 듯,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버렸다.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면 참 별 일이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꽤나 힘들었던 공황 증세가 찾아왔고, 그 끝으로 나는 이 업계를 떠나기로 생각보다 이른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토록 머리를 아프게 했던 고민이 종결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