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한 달 차에 생긴 일이다.
입사 후, 바로 둘째 날부터 야근을 하는데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에는 두통도 동반했다. 1시간을 앉아 있는데도 5분의 집중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이 통증과 증상은 며칠간 야근하며 내내 지속되었다. 나는 내과를 찾아갔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혹시 나랏일 걱정하냐며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약을 지어주셨다.
한동안 약을 먹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어떤 날은 그 증상이 너무 심해서 호흡이 막히는 듯한 가슴의 답답함과 통증을 느꼈다. 심호흡을 내리 하다가 화장실로 가서 울음을 터뜨렸다. 헉헉 거리며 울다가 "내가 어떻게 다시 마음먹고 들어온 회산데, 여기서 일 년은 버텨 보기로 다짐했는데, 할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 상태로 입사 이주차에 일본 워크샵에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생각보다 이곳을 오래 다니지 못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증상은 더욱 심해져 다시 내과를 찾았다. 무슨 큰 병에 걸린 건 아닐지 내심 걱정됐다. 심전도와 엑스레이 검사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약을 먹어도 계속 아프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그럼 정신과 가셔야죠."라고 의사 선생님은 대답하셨다. 친구들에게 이 말을 전하며, 나는 상처받은 듯한 얼굴을 내비치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는 게 맞는 것 같다며, 감기 걸리면 병원 가듯이 한 번 꼭 가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살면서 방문해 본 적이 없어서 어색했다. 병원을 예약하려니 이미 몇 달치 예약이 가득 차 있어서 정말 과장하지 않고 20군데 넘게 전화를 돌렸지만 당장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이렇게 치열할 수가. 현대인들에게 있어 요즘 정말 많이 찾는 곳이구나 싶었다.
겨우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전화한 곳이 방문 가능하다 해서 다녀왔다. 대기석에 앉아서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그동안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공황 자가 진단 체크를 해보았다. 꽤나 체크 항목이 많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쭉 들어보시더니 공황 증세라고 말씀해 주셨다. 친구들이 공황 같다고 말해줬는데 그 말이 진짜였다. 공황 장애까지는 아니어서 약 먹으면 금방 나을 거라고 하셨지만 약을 먹는 것도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이직을 하자마자 생긴 공황 증세는 분명 일과 연관이 있었다. 반복되는 야근과 6개월 간 세 차례의 이직을 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긴장감, 경력직으로서 자질을 인정받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과 압박감, 억지로라도 견뎌내려고 했던 두려움 등. 그간 쌓여 온 나의 모든 것들이 충돌하여 터진 것이었다.
출근을 하는 하루하루가 내게 숨이 막힐 정도로 살얼음 판을 걷는 기분이었고 마치 전쟁터 같았다. 그 정도로 큰 긴장감과 부담감이 늘 함께 했고 이대로 지속되면 내가 정말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입사 한 달 만에 회사를 관두자니 남들도 다 하는 것을 제대로 부딪혀보지도 못하고, 스스로에게 패배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내가 나를 나약한 존재로 취부해 버리곤 했다. 이전의 단순하기만 했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이런 내가 그저 낯설었다.
- 2025.05.01 일기장 발췌 -
마음이 소란스러운 어느 날의 기록.
머릿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려 수만 가지 생각이 둥둥 떠다닌다. 이 생각들은 내 청춘의 서사가 되어 줄 것임을 알기에 흘러가는 생각이 되지 않도록 기록해 둔다. 여러 가지 순간적인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기에 기록하기에 더없이 쉽지 않지만 말이다.
고민이 참 많은 요즘, 성장통을 앓는 중이다. 25년 5월이 되었는데도 회사를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상황을 요약하자면 4월 중순에 이직한 곳에서 한 달 수습기간을 마치고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 회사에 일이 없다며 잘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을 들은 당시엔 멘붕이 와서 나의 뇌는 한동안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타격을 입은 듯했다. 그토록 지켜온 디자인 욕심을 울며불며 힘겹게 버리고서 이제야 워라밸 가능하고 월급 높은 곳을 찾아서 내 삶을 살아보고자 했는데 우울감이 밀려왔었다.
역시 보다 쉬운 길을 바라는 삶을 살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워라밸을 지키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없는 쪽으로 흐르는 것인가. 결국 이 회사는 내게는 독이었으니 다시 열심히 달려보라고 누군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퇴사를 하고 다시 백수가 된 지금에서 든 생각은 어찌 되었든 그 회사에서도 성장이 있기야 하겠지만, 더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려고 이렇게 된 것이라 생각됐다. 상황적으로는 이렇게 됐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 상태는 그럴 각오가 쉽게 서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나. 당장 경제생활은 해야 하니 퇴사 직전부터 이력서를 미친 듯이 넣고 면접 세 곳을 보고 왔다. 면접을 보고 오니 여전히 인테리어를 놓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생각의 갈피를 잡기가 힘든 상황에도 이렇게 인테리어를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며 주변을 맴돌고 있다.
나는 도면을 보면 숨이 막힌다. 이건 이전 회사에 있었던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도면은 내게 마치 두려움의 존재다. 단순히 지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 적성과 인테리어와 정말 맞지 않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체계적으로 습득하지 못해 물경력이라는 것을 인지 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인테리어에 더욱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고등학생이 고등 수학을 배우고 있음에도 중등 수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겁을 먹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연쇄적인 질문들조차도 이젠 나를 지치게 한다. 지금 상황에선 어떤 한쪽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된 것만 같다. 이젠 나도 정말 모르겠으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 결과에 순응해 볼까. 그런 마음까지도 닿게 되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정말 그렇게 살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인데, 현재로선 도저히 머릿속이 멍해져 판단이 서지 않았다.
워라밸, 연봉에 치우쳐 보다 편안한 근무생활 속에서 요행을 바랐던 마음, 그 삶을 한 달간 살다가 나오니 이 마음은 쉽게 뿌리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 직후까지도 연봉이 높은 곳들만, 야근이 없을 것 같은 곳들만 쳐다보았다. 회사의 디자인과 작업물에 포커스를 늘 맞추었던 내가 이제는 편안함을 바라는 마음에 혈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보름이 지나고 나니 단계별로 생각이 자라나고 있다. 마음속이 너무도 흐릿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조차 몰라서 내려놓았다가, 이제야 점점 정신이 차려지는 것일까. 이전의 내 모습이었던 오래전, 과거의 내가 품었던 마음이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대로 한번 부딪혀 보자는 마음. 계속 겁먹고 도망치는 내 모습과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내게는 여기까지 생각이 닿는 동안 정신적인 근육이 생길 수 있도록 적응하고,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부딪혀서 잘해보고자 다짐했던 마음과 달리, 나는 한 달이 채 되지 않고 무너져버렸다. 퇴사를 말씀드리기까지 나의 나약한 정신력에 대해 계속해서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난 이런 사람이 아닌데, 정말 난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의도하지 않아도 늘 "버텨라"라는 말만 들려오고 귀 기울이게 되던 지난날들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고민 끝에 버티지 않기로 택했다. 그 결정조차 스스로를 패배자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었기에, 정신적으로 힘겨웠지만 더 버티다 이대로 정말 건강이, 몸도 마음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지나고 나서 먼 곳에서 바라보니, 애초에 나와 맞지 않는 옷을 걸쳐 입고 내가 나약하네 마네 논할 거리가 아니었다. 늘 인테리어 주변을 맴돌았던 마음은 공황증세가 찾아옴과 동시에 증발해 버렸다. 사실은 나약하다며 자신을 몰아넣고 있었으면서도, 동시에 더는 미련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행복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고, 일을 할 때 행복했던 내가 이제는 행복하기 위해 이 일을 그만두었다. 나를 잃으면서까지 얻어야 할 어떤 소중한 가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6개월간의 세 번의 이직 끝에 이 모든 과정과 경험들은 결국 또 하나의 서사가 되었다.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렇게 만들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