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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08.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46)

제146편 : 성미정 시인의 '상추쌈이나 한 상'

@. 오늘은 성미정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상추쌈이나 한 상
                               성미정

  눈물 마른 날에는 상추쌈이나 한 상
  먹어야겠다 시들부들 말라가다가도
  물에 담그기만 하면 징그럽게
  다시 살아나는 상추에 밥을 싸서
  한입 가득 먹으면 지금
  눈에서 나오는 물은 상추 때문이라
  말하며 목이 메게 상추쌈이나
  먹어야겠다 세월이 약이란 새빨간
  거짓말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에
  된장을 척 발라 꾸역꾸역 삼켜봐야겠다
  주먹으로 가슴패기를 팍팍 쳐가며
  섬겨봐야겠다 상추를 자를 때 나오는
  하얗고 끈끈한 진액이 불면증엔
  특효약이라니 상추쌈이나 한 상
  가득 먹고 뿌리까지 시들게 하는
  오래된 상처일랑은 그만 이겨버리고
  뉘엿뉘엿 날이 저물 때까지
  낮잠이나 자는 척해야겠다
  - [읽자마자 잊혀버려도](2011년)

  #. 성미정 시인(1967년생) :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서울 강남에 해외 그림책, 디자인 서적과 큐브릭, 어른을 위한 장난감을 파는 [마이 페이버릿]이란 ‘컬렉션 숍’을 남편 배용태 시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음.




  <함께 나누기>


  유튜브에서 외국 남자들, 특히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음식 먹을 때 놀라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자기네 여성들보다 작고 아담하여 귀엽고 이쁜 한국 여인네가 식사하는 장면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요.
  삼겹살을 싸 먹거나 그냥 쌈을 싸 먹을 때 우리나라 여인의 그 조그맣고 이쁜 입이 얼마나 크게 벌어지는지. 그렇지요, 우리에게 상추쌈은 크게 한 입 벌려 먹는 게 습관이니 벌릴 수 있는 대로 벌리는데, 그게 외국인 눈에는 경이로웠던(?) 모양입니다.

  오늘 시는 요즘 시인들이 활용하는 ‘행간걸침’이 눈에 뜹니다. 첫 부분만 잠깐 볼까요?
  “눈물 마른 날에는 상추쌈이나 한 상 / 먹어야겠다 시들부들 말라가다가도 / 물에 담그기만 하면 징그럽게 / 다시 살아나는 상추에”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시행으로 바꾸면, ‘한 상’과 ‘먹어야겠다’를 이어 표현해야 함에도 따로 행을 나눈 방식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행간걸침’은 독자에게 긴장감 유발하여 시를 읽다가 시의 특정 부분을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눈물 마른 날’, ‘지금 눈에서 나오는 물’ 같은 표현으로 보아 지금 화자는 뭔지 모르나 슬픔이 치밀어올라 견딜 수 없는 상황인가 봅니다. 그래서 아래로 가면 ‘상추를 자를 때 나오는 하얗고 끈끈한 진액이 불면증 특효약’이라 하여 상추쌈을 먹으려 합니다.
  살다 보면 괴롭고 힘들고 외로워 잠 못 들 날이 있을 겁니다. 잠자리에 누워도 그런 상처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화자는 상추쌈을 싸서 밥을 먹습니다. 그러면 배가 든든해지고 불면증도 치료되니 잠이 잘 온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우리는 압니다, 단지 상추쌈을 싸 먹는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가 가라앉고 평온하게 잠들 수 없다는 사실을요. 그럼에도 이 방법을 택함은 다른 방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배가 부르면 어느 정도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옴도 사실이지요.

  “세월이 약이란 새빨간/ 거짓말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에 / 된장을 척 발라 꾸역꾸역 삼켜봐야겠다”

  우린 아픔을 잊는 가장 큰 치료약이 시간(세월)이라고 말하지요. 시간이 지난다고 하여 아픔이 완전 사라지진 않지만 그래도 좀은 누그러지겠지요. 여기서 ‘된장’은 상추쌈에 필요한 양념이면서 상처에 바르는 소독약 두 가지 뜻을 함께 지닙니다.

  “상추를 자를 때 나오는 / 하얗고 끈끈한 진액이 불면증엔 / 특효약이라니”

  예전에 들은 얘기입니다. 한 여인이 시험을 앞두고 입맛 잃어 억지로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상추쌈으로 식사했나 봅니다. 결과는 시험 치는 내내 잠이 와 시험을 망쳤다는 전설(?). 사실 점심 때 상추쌈 먹고 나면 오후 내내 졸리지요.
  이 시행은 그런 뜻보다 상추쌈으로 한 상 가득 먹고 오래된 상처를 그만 잊고 잠들고 싶다는 뜻입니다. 아프고 힘들고 외로울 때 모든 걸 다 잊고 한숨 자는 게 특효약일지도... 그러면 상추에 된장 척척 발라 한 상 푸지게 먹고 잠도 좋은 방법일지도.

  요즘 우리 집 텃밭에 상추가 싱그런 빛깔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혹 옛 상처가 덧나 힘드신 분들은 오늘 식사 때라도 상추쌈 먹고 잊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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