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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19.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23)

제223편 : 조동화 시인의 '강은 그림자가 없다'

@. 오늘은 조동화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강은 그림자가 없다

                                    조동화


  해 아래서는

  크든 작든 저마다의 푼수만큼

  검은 그늘 한 자락씩 나누어

  제 발목에 꿰찰 수밖에 없지만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누워

  온갖 물상(物象)들의 허물 가슴으로 거두며

  더욱 낮은 바다 향해

  홀로 제 아픈 등 밀고 가는 강은

  그림자가 없다

  - [나 하나 꽃 피어](2914년)


  #. 조동화 시조시인(1948년생) : 경북 구미 출신으로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시조)를 통해 등단. 경주문화고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후 목회자가 되어 '경주성경침례교회' 목사로 재직 중




  <함께 나누기>


  조동화 시인은 詩(시)도 쓰고 時調(시조)도 많이 썼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나 하나 꽃이 되어」란 작품은 널리 알려졌지요.  오늘 시는 시조가 아닌 현대시에 속합니다. 그러면서도 운율을 살리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보통 강을 시에 끌어올 때 도도히 (막힘이 없고 기운차게) 흐른다거나, 유장하게 (길고 오래) 흐른다 하여 강물의 흐름에 주목합니다. 오늘 시는 그런 표현과 달리 강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고 하여 세상의 모든 아픔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쓰였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해 아래서는 / 크든 작든 저마다의 푼수만큼 / 검은 그늘 한 자락씩 나누어 / 제 발목에 꿰찰 수밖에 없지만"


  해가 비치는 범위 아래 사는 모든 물생들은 저마다 그늘 한 자락씩 나누어 제 발목에 찬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해가 떠있으면 그늘이 생김은 너무나 당연한 일. 헌데 하필 검은 그늘일까요? 그냥 그늘이라 해도 되련만.

  세상엔 밝음이 있으면 어둠도 있기 마련입니다. 행복과 평화를 누리는 세상 저쪽에는 불행과 분쟁의 그늘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강은 남들이 다 갖는 검은 그림자를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강은 그림자가 없을까요?


  우리들은 위를 향해 나아가려 하기에 그림자가 생기지만 강물은 낮은 곳으로만 흐르기에 그림자가 없습니다. 그렇지요, 자고 일어나 움직이는 순간부터 우리의 눈은 높은 곳으로만 향합니다. 어쩔 수 없이 낮은 곳에 위치해도 마음속은 언제나 위를 향합니다.

  텔레비전 속이든 유튜브 속이든 신문에 뜬 기사 대부분은 남들보다 높은 지위와 권력을 지향하며 살려는 욕망을 드러냅니다. 강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낮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자 하는 사람 얘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강의 모습이 시인의 눈에 더욱 들어왔을 테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누워 / 온갖 물상(物象)들의 허물 가슴으로 거두며”


  읽는 순간 ‘참 멋진 표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높은 곳을 지향하는 물상은 허물을 내보일 수밖에 없지만 낮은 곳에서는 허물을 받아들입니다. 강은 남의 허물을 지적하는 대신 감싸려 조용히 받아들여 흘러갑니다. 너무 많은 허물의 그림자를 받아들여 그림자가 없어졌는지도...


  “더욱 낮은 바다 향해 / 홀로 제 아픈 등 밀고 가는 강은 / 그림자가 없다”


  강의 낮추는 자세는 더욱 읽는 이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자기도 낮은 위치지만 자기보다 더 낮은 바다로 수많은 그림자를 몰고 갑니다. 어쩌면 희생의 본이 되기도 하고, 내려놓음의 실천자가 되기도 하면서 강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강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어떤 인물이 될까요? 아니 이런 사람 있기는 할까요? 문득 모든 허물을 가슴으로 거두며 흘러가는 강물 같은 사람이 보고 싶은 오늘입니다.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사랑한다는 것 -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위해 기꺼이 종이 되는 일


  그리고 또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위해 종이 되고서도

  끝끝내 종이 된 줄을 모르는 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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