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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영현 Sep 22. 2023

깜빡깜빡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깜빡깜빡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감기약은 매번 눈을 감기지

거실 등이 깜빡거린다

led 등은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늘어난다

아이스크림 가게 키오스크 앞에서

숫자 초를 사려면 무얼 눌러야 할지 몰라

4와 9 대신 13개의 초를 들고 왔던 것처럼

눈을 깜빡거리며

어디에 연락해야 할까

의자 위에서 팔을 뻗어 등을 갈던

형광의 눈부신 순간을 떠올리며

전화기를 뒤적인다

누가 나를 보고 있다면 아마도 나는

하루하루 능력을 잃어가는 마법사

혹은 기억을 잃어가는 실험쥐

안경을 벗으면 안 보이는 세계가 보인다

경계가 흐려지는 건 한 순간이다

어서 전화를 해야지

통째로 뜯어내고 갈아버려야지 빛을 위하여 빛을

led 등의 수명은 얼마나 되나요?

형광등보다 오래 가긴 해도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는 등 아래서

촛불을 켠다 훅, 불어 끄기 위해

Happy birthday Happy birthday

차가운 케이크 위에서

너무 많은 초가 한꺼번에 타오른다




-「문장웹진_콤마」『문장웹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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