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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20. 2023

딸과 나, 그리고 사위의 등 · 하원 방



  3월 초 딸이 복직하면서 등 · 하원 방이라는 채팅창이 뜨고 숫자 3이 보였다.  

딸이 “엄마? 말할 게 있으면 여기에 써요.”라는 카톡이 떴다. 

나는 이곳에 어린이집 선생님, 딸, 할머니인 내가 의사소통하는 곳인 줄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위의 카톡이 툭 튀어나왔다. ‘아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니라 사위였어?’

사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카톡 방에 있을 수 없는데 나 혼자 생각이었다.


  섬세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사위는 두 아이 등원시킨 후, 출근길 전철에서 글을 남긴다.   

사실 일찍 출근한 아내가 궁금해할까 봐 손주들의 아침 근황을 알려주는 듯하다.  

기록은 필자에게도 단순히 머릿속으로만 품고 있는 것보다 내용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정제해  주는 단계이고 여유를 준다. 기록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해결 방법을 찾기도 한다. 자기가 시도했던 것에 문제가 생기면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뇌를 발동시켜 초 집중하게 될 것이다.

  나는 단지 오후 4시간 정도 손주를 돌보지만 굉장히 다이내믹한 활동이 이루어져 처음엔 벅찼다. 3살 손자는 3시쯤 하원시켜 놀다가 손녀가 5시에 하원하면 그때부터 놀이터에서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한다. 손자는 대범하고 조심성이 뭔지 모르는 나이라 따라다니다 보면 금세 체력이 고갈된다. 손주들은 너무 신나 좀처럼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아서 힘들었다. 손주 돌본 지 석 달이 지났다. 이제는 조금씩 손주들도 조심할 줄 알아가고 할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결 힘이 덜 든다.

  가끔 “어머님, 빨래를 아침에 널어서 집에 오시면, 습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어요.

너무 습하면 창문 잠깐만 열었다 닫아 주세요.”라고 장모님께 부탁의 말도 남긴다. 우리 딸 마음 알아주고 성심성의껏 정성을 다해 도와주는 아니, 분담해 열심히 사는 사위가 고맙다. 빨래 탈탈 털어 각 잡아 널어놓기, 설거지 그릇 일렬로 세워놓기에 진심인 사위의 등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자태다.


  작년 손자 돌 때 나는 사위에게 “아이 키우는데 도와줘서 이렇게 잘 컸네. 정성껏 도와줘서 고마워.”라며 덕담했다. 사위는 정색하며 “육아나 가사는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하는 거예요.”라며 내 맘에 쏙 드는 정답을 말했다. ‘요즘 젊은 남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인지, 우리 사위가 특별한 건지?’ 나는 어디 한 대 딱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 어린 한마디에 사위에 대한 무한 신뢰가 생겼다. 특히 빈말을 잘 안 하고 보통 땐 새색시처럼, 모범생처럼 얌전하다고만 생각했다.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손주들 태어나기 전에는 어색하게 앉아 있어서 어렵기도 했다.



  카톡 방을 보니 조용조용한 사위가 폭풍 잔소리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분주하게 울면서 뛰어가 가까스로 유치원 버스 타는 손녀, 어린이집 앞에서 들어가기 싫어, 다른 우는 형 따라 우는 손자 모습이 그려졌다. 상상만 해도 너무 웃겨서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참지 못하고 카톡을 보냈다.    

이런 카톡이 뜨니 사위와 한 발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나도 등 · 하원 방에 손주들 병원 다녀온 결과와 추후 대처 방법, 손주들의 그때그때 변화하는 상황을 올린다. 가끔 손주들 예의범절에 관한 이야기, 조금은 껄끄러운 이야기들을 잊기 전에 카톡 방에 올린다. 훈육과 사랑은 경계선이 모호하다.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지도했는데 훈육이 될 때도 있다.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걸 받아주면 안하무인이 되기도 할 것 같다. 내 자식이 아니고 손주라서 더 조심스럽고, 내 감정이 더 쉽게 피곤해지기도 한다. 결국 손주 눈치, 사위 눈치, 딸 눈치를 나 스스로 보게 된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가사 분담, 육아 분담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대부분 할머니나 육아 도우미가 도와준다. 우리 사위는 탄력근무제를 이용해 두 손주 등원시키고 출근한다. 아침마다 치열한 등원 전쟁을 치르고 출근길에 등 · 하원 방에 기록을 남겨 셋이 소통할 장을 만들고 있다. ‘먼 훗날 자기도 육아 현장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고, 아빠로서 제 몫을 다하려고 무지 애썼다.’라는 것을 알면 스스로 감동할 것이고 가슴 벅찬 추억이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하루가 각자 1/3씩 역할 분담으로 나뉘어 있다.

아침 등원시키기는 사위가, 하원은 할머니가 시키고 딸이 올 때까지 돌본다. 나머지 음식 준비와 저녁에 아이들 육아는 딸이 하니 그래도 딸과 사위가 조금 더 편안히 숨이 쉬어지겠지!

나도 하원 후 아이들 장난감 고장 난 것 고칠 것 알림,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등원시킬 때 옷은 무엇을 입혔는지? 알아보고 하원 준비를 한다. 또한 손주들이 갑작스럽게 다치거나, 열나거나, 내가 찾는 물건이 없을 땐 등 · 하원 방을 이용해 즉각 문제를 처리할 수 있어 좋다.


  실제로 세 명이 모여 가끔 손주들 몸이나 감정 상태, 분위기를 이야기하면 가장 좋을 수도 있을 텐데~~~. 모두 따로따로다. 그래서 서로 소통하기 어렵다. 사실 난 일주일 내내 사위 얼굴을 거의 볼 수 없다. 이렇게 사위가 남긴 등원 기록은 그다음 내가 손주들 하원시킬 때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맞이해야 할지 계획이 세워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아침에 떼쓰고 가거나 울고 갔다면 하원할 때 조금 더 신경 써서 안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러나 하원 때 손주들은 보통 아침 일은 까맣게 잊고 해맑게 할머니와 만나서 고맙다.

등 · 하원 방은 모두 정신 차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하자는 다짐과 격려의 방이기도 한 듯하다. 그래서 나도 가급적 딸과 사위가 특별히 신경 쓰지 않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주어진 1/3의 임무를 잘 완수하려고 노력하고 공부도 한다.

손주들이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 두 팔 벌려 할머니 품에 안길 땐 모든 고민과 힘듦이 사그라진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받았던 힘듦을 주말에 남편한테 많은 걸 털어놓는다.

일단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내 감정을 털어놓기만 해도 스스로 힐링이 된다. 그리고 나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간다. 그래도 남편은 내 말 잘 들어주고, 호응해 주고, 가끔 참신한 해결책도 제시해 준다. 그러면 과거 육아에 대해 도움을 받지 못해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 희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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