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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Oct 20. 2023

육아에도 임무 인수인계가 필요하다

(작은딸한테 임무 인수인계받기)


  아이들은 각양각색 고유의 루틴을 가지고 있다. 엄마, 아빠가 양육해도 부모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해서 천국과 지옥을 오갈 때가 많다. 하물며 부모도 아닌 제3 양육자인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님 등이 생활하다 보면 그렇게 루틴대로 호락호락 잘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작은딸이 복직하기 전에 손주들과 해야 할 루틴을 알고 싶어 여러 번 관찰했었다. 솔직히 그냥 손주가 보고 싶어서 여러 번 만났고 어린이집 하원도 같이 시켰다. 다음 주부터 당장 내 소속, 내 전담으로 바뀌니 부담감이 밀려왔다. 놀이터에서는 어떻게 노는 게 안전한지 딸만 키워온 나는 궁금했다. 어린 손주를 볼 때 더 바짝 긴장해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감히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대범하게 미끄럼틀을 타는 17개월 손자를 보니 상상 밖이었고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느 지점에서 아이를 지켜봐야 가장 좋고 안전한지 딸과 같이 사전 연습하며 지켜봤다. 사전 연습은 연습일 뿐 실전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다. 걱정은 많았지만, 딸이 손주를 잘 키워서 예상보다 수월하지 않을까 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딸은 혹시라도 엄마가 아프거나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내 입 속에 방울토마토를 넣어주며 안심시켰다. 난 곧바로 “골프 라운딩 가고 싶다고 말해도 돼?”라고 물었다. 언제든지 말하라고 딸이 대답했다. 그 말만 들어도 가슴이 뻥 뚫렸다. 저녁밥도 먹고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해줘서 딸이 고마웠다. 방이 추울 때 온도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으로 설명해 줬는데 기계치라서 지금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내가 난방기기 맞추기 힘들다고 했더니 사위가 그냥 어머님 집과 같은 방법으로 하셔도 된다며 돌려줬다.


  다행히 사위가 남매 유치원,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출근하고 나는 오후 3시쯤 하원 시켜 딸이 퇴근할 때까지 돌본다. 그렇지만 손주 돌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너무 피곤해서 유치원, 어린이집에 가지 못해 가정 보육을 해야만 할 때이다. 나는 작년 큰딸 삼 남매 돌볼 때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렇게 고맙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통감했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활동도 하고, 놀이도 하고, 낮잠도 자고, 간식도 먹으면서 보낸다. 그러나 특별한 노하우도 없는 할머니가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특히 바깥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 손녀는 더 지루해해 힘들었다.


  딸은 남매 하원 시간이 다르니 어떻게 하나하나 해왔는지 체험하고 표로 만들어 부쳐 주었다. 자식에겐 언제나 텐션이 좋은 딸이 임무 인수인계 시 첫 번째 루틴 챙기기는 손녀가 유치원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중해서 말 들어주는 것이란다. 손녀는 유치원에서 활동한 자기 작품을 들고 그날 일어났던 것을 말하는데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운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학교 가면 이런 것이 문제가 될 것 같아 스위트한 할머니로만 대응하고 싶지는 않다.


  복직 몇 달 전부터 나는 튼실한 17개월 된 손자를 유모차에 들어 올리는 것이 생각만 해도 

허리 다칠까 두려웠다. 대놓고 딸에게 손자가 유모차에 스스로 탈 수 있도록 미리 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처음 그 소릴 들을 땐 딸도 서운한 마음이 있는지 시큰둥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할머니의 고민이 조그만 손자에게 전달된 것일까?’ 손자는 밖에 나가고 싶을 땐 먼저 유모차에 달랑 올라타 앉아 있다고 한다. 어제도 할머니가 집에 간다고 옷을 입으니 똥 기저귀만 차고 유모차에 혼자 달랑 올라타 있었다. 아직 말은 못 하지만 알아듣는 귀는 엄청나게 발달한 듯 다 알아차리고 먼저 행동한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지금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내가 임무 인수 인계받은 첫날부터 모든 사전 예행연습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필 딸 복직 첫날 손자가 열이 나고 기침이 심해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가정 보육을 하게 되었다. 손자에게 처음으로 엄마, 아빠 둘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첫날이었다. 아이가 현관 바닥에 드러누워 울어대니 너무 황당했고 머릿속이 하해 졌다. 마음속으로 이 아이가 엄마, 아빠가 한꺼번에 없어져서 배신감, 당혹감에 운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할지 난감했다. 손자가 엄마 보고 싶어 우는 상황을 알게 되면 딸이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상당한 시간 동안 문을 박차고 나갈 기세로 발버둥 치며 우는데 너무 가슴 아팠고 아이가 걱정되었다. 급기야 딸한테 최대한 절제된 어투로 “왜 우는지 울음을 그치지 않네”라고 카톡을 넣었다. 역시 엄마는 엄마였다. 엄마에게 모든 해답이 있었고 첫마디가 배고프거나 졸린 거 같다고 했다. 발버둥 치며 우는 손자 손 부여잡고 밥을 몇 숟갈 떠먹이니 감쪽같이 진정되었다.


‘세상에나 이런 거였구나!’

제3 양육자 할머니는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3가지를 놓쳐버렸다. 

‘배가 고파 우는 건지? 

기저귀를 갈아야 해서 우는 건지? 

졸려서 우는 건지?’ 항상 생각해야만 하는 세 가지를 당황하니 놓쳐버렸던 것이다.


  사실 난 손주가 다섯이다. 이번 다섯 번째 손주를 돌보고 있지만, 네 명은 모두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때 만났다. 그래서 소통에는 문제가 많지 않았다. 이 아이만 아직 말을 못 해서 소통이 어려웠던 것이다. 어리지만 눈치는 빤한데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날 그 일을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고 가슴이 먹먹하다. 그날도 아침 바쁜 시간이라 사위와 임무 인수인계 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식탁에 밥이 있었는데 단순히 전기밥솥만 열어보고 밥이 없다고 생각했다. 예약해 둔 저녁밥을 누르고 밥 될 시간에 산책을 하러 갔던 것이다. 돌아오면서 집에 가서 밥 먹자고 실컷 얘기했는데 유모차에서 내리자마자 울어버리니 당황해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다.


 ‘그 아이에게 당장 밥을 내놓았으면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무턱대고 울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 

당황하고 세심함이 부족한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울린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또다시 아린다.


  놀이터에서 맘껏 놀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위험해. 추우니 이제 그만 놀고 집에 들어가자.”라며 통제하니 할머니가 제일 싫다며 감정 노동을 시키는 손녀. 놀이터에서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손자 쫓아다니느라 육체노동에 힘들어도 그 아이들 때문에 실컷 울고 웃는다. 딸과 사위가 손주를 믿고 맡겨 편안한 마음으로 직장 생활하도록 도움 줄 수 있어서 좋다.


  손주 돌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예기치 않은 변수가 많고 절대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아무 때나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대안도 없이 딸과 사위가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파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부정적인 말은 나를 더 지치게 할 뿐 신박한 방법도 없다. 


  아직 어린 손주들 태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할머니, 아니 어른인 내가 먼저 손주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를 바꾸는 게 우선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딸과 사위에게 2년만 더 크면 아이들도 커서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할 거라며 비전도 제시한다. 

또한 직장생활과 육아로 영혼까지 탈탈 털린 딸 마음도 헤아려 줘야 한다. 

이런 바쁜 시간 속에 내가 꾸준히 하는 글쓰기 활동, 운동은 나에게 삶의 활력소를 주고 내 마음 근육을 튼튼하게 붙잡아 줘서 열심히 한다. 건강관리를 잘해서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손주를 안전하고 즐겁게 돌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론 더 세심하고 사랑 가득하게! 

손주들에게 애정과 자율권도 주면서 손주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

애정이 듬뿍 담긴 얼굴 표정, 온화한 눈빛과, 따스한 손길, 

다정다감한 어투로 손주들을 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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